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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12. 2022

시작이 좋은 것 같다. 이렇게만 계속 하자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4일째, 5일째

- 방학 4일째 -

방학이 시작하고 첫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다. 휴직 중으로 주말이나 평일이나 크게 다른 느낌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월요일은 다르게 느껴진다. 뭔가를 더 열심히 하거나 꼭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니면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정도는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랄까. 


그래서 오늘부터 딸의 방학중 시간표에 맞게 공부를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학교 친구이자 동네 친구인 그래서 딸의 베프인 친구의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생일인 친구, 우리 딸,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를 데리고 오전 11시쯤 전주 한옥마을을 간다고 했다.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먹여 보내주신다고 했다.  


뭐 당연히 보내줬다. 점심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하루 종일 데리고 놀아주신 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단 1도 없다. 그래서 딸은 오늘 시간표대로 실행하기는 어려우니 내일부터 하면 어떠냐고 물어봤다. 단 대답했다.

"11시 까지는 정해진 대로 하고 다른 건 갔다 와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첫날부터 어기는 건 좀 그러지 않아?"


그렇게 딸은 오전에 할 일인 피아노 45분, 플루트 45분 연습에 들어갔다. 여름방학 때도 딸을 보며 느꼈지만 하기 싫어하면서 그래도 시간표에 맞게 할 건 다하는 성격이다. 당연히 싫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투덜 되긴 했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악기 연습을 열심히 했다.


중간쯤 쉬는 시간이 좀 길어지길래 하기 싫냐고 물어봤다.

"힘들어서 쉬는 거야"

"아빠가 항상 이야기 하지만 피아노, 플루트 배우기 싫으면 안 배워도 괜찮아. 너한테 그거 강제로 배우라고 하는 사람 없다."

"알아. 난 계속 배울 거야. 계속 배우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연습이 재미있는 건 아니지"


이런 대화를 연습 때마다 하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 때도 거의 매일 했던 것 같다. 그땐 나보다 엄마랑 더 많이 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연습 시간이 끝날 때쯤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이제 출발하니까 집 앞으로 나오라고 말이다. 딸은 그 길로 방으로 가서 친구 선물을 챙긴 후 "아빠 갔다 올게. 피아노랑 플루트 정리 좀 해줘"라고 말하며 번개처럼 뛰어 나갔다. 


막내는 매일 아침 유치원 방과 후 과정을 가서 오후 4시에 돌아오고, 딸은 오늘 하루는 저녁까지 먹고 온다고 하니 마음이 참 편안하다. 방학 전에 아이들이 집을 비우는 것과, 방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아이들이 없는 건 다르다. 같은 집, 같은 공간에 같은 아이들이 자리를 비워서 항상 우리 부부만 머물고 있는 건데도 다르다. 정확히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느낌이 다른데... 암튼 더 좋다. 자주 나갔으면 좋겠다.


딸은 저녁까지 먹고 해가 떨어진 이후에 집에 돌아왔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는지 우리 밥 먹는 식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있었던 모든 것들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 방학 5일째 -

오늘이 방학 때 가장 자주 벌어질 일상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차리고, 막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때쯤 딸은 피아노 연습 45분을 한다. 그리고 10시쯤 함께 운동(클라이밍)을 하러 간다. 

클라이밍 두 번째 수업인데 힘들다. 그런데 재미있다. 딸도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한다. 다음날 근육통이 일어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으면 휴직하자마자 혼자라도 시작해 볼걸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


운동이 끝난 후 직장인의 점심을 하려 하였으나 딸이 오늘은 꼭 라면이 먹고 싶다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집에서 라면을 먹고 딸은 화요일과 목요일 3시에 동네 아이들 몇몇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지자체 미술 강좌가 있는 날이기에 거기에 참석했다. 


미술 수업인지 아이들끼리 모여서 노는 시간인진 모르겠지만 즐겁게 마치고 동생하고 놀아 주기 시작했다. 딸이 동생하고 잘 놀아줄 땐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정말 동생하고 놀고 싶어서.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피아노나 플루트 등 정해진 수업이 있는데 이걸 내가 모른 척해주길 바랄 때.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오늘도 그 두 번째 이유로 동생과 놀아주고 있다는 걸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딸. 플루트도 안 했고 문제지도 안 풀었는데? 언제 할 거야?"

"아... 지금 할게. 00야 아빠가 누나 공부하래? 못 놀아 주겠다."

"누나. 놀아줘~~. 아빠 나빠"란 말이 동생 입에서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럼 조금만 더 놀다가 자기 전까지 오늘 할 일 다해야 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저녁에 할 일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9시만 되면 졸려서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아직 방학 초반이라 그런 건지 저녁을 먹고 본인이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다 실행했다. 거짓말처럼 저녁을 먹더니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그 이후엔 독서를 하는 것이다.


'기특한 것' 오늘 고생 많았어. 내일도 오늘처럼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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