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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16. 2022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6일째, 7일째

- 6일째 -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가만히 있었으니깐 내가 다 도와준 거지!"

딸과 대화할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너무 기가 막혀 대답을 할 수 없게 하는 말을 하루에도 수 없이 해댄다. 그중에서 오늘 가장 핫했던 말이 위에 쓴 말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상을 차린 후 가족들을 불렀다.

"밥 먹자. 나와"

"밥 차리는 소리 들리면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부르기 전에 앉아라도 있어라"

그때 우리 딸이 했던 소리가 저 소리이다. 막상 저 말을 들으니 맞는 말 갔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수긍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인정할 수는 없는 말이기에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내랑 한바탕 웃고 넘어가는 것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이 딸이 생각해도 괜찮은 말이라 생각했나 보다. 내가 청소하는 것 좀 도와주지, 세탁기 안에 빨래 다 되었으니 가져다줘 이런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응 가만히 있을게. 그게 도와주는 거니깐"이라고 대답을 하며 뺀질거린다. 이놈의 자식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결국 나 혼자 한다. 결국 과거에 내가 짜증 내며 했던 말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 거니 누구한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오늘은 딸이 오전에는 본인이 세운 방학 시간표를 제대로 지켰다. 피아노는 45분에서 8초를 더 했다. 

"아빠, 빨리 말해야지. 8초 넘었잖아. 내일 8초 뺀다" 

플루트는 45분이 되기 전에 내가 아내와 일정이 있어 잠깐 나갔다 왔기에 정확히 했는지에 약간의 의문은 있다. 딸이 정확하게 지켜서 했다는 말은 믿지만, 우리가 나갈 때 너무 밝에 웃으며 "잘 가. 천천히 와"라고 했던 그 장면의 의뭉스러운 눈초리는 한 껏 의심스러운 마음을 품게 했다.


그리고 점심으로는 딸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만들기 쉬운 떡국을 해 먹었다. 잔치국수를 해도, 떡국을 끓여도, 계란국을 끓여도 맛이 모두 비슷하다. 원래 그런 건가 내가 한 가지밖에 못 만드는 건가 그건 모르겠다. 맛이 없진 않지만 크게 맛있지도 않은 그저 그런 맛이다. 휴직 후 삼시 세 끼를 수개월 차리면서 음식을 만드는 솜씨는 늘었는데, 맛을 내는 솜씨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딸의 말에 기가 막힌 걸 제외하고는 평온한 하루였다. 딸은 딸대로 본인이 해야 할 것들을 잘 해냈고,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해치웠던 것 같다.


- 7일째 -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많이 쌓이길 바랬지만 아쉽게도 금방 그쳐버렸다. 눈이 많이 오면 집 앞에서 썰매만 타고 놀아도 하루 금방 지나가는데 많이 아쉽다. 출퇴근 걱정이 없으니 눈이 많이 오나 비가 오나 걱정이 없다. 3월부터는 날씨가 좋아도 나빠도 항상 짜증이 날 테지만 말이다.


근처(약 차로 40분 거리)에 떨어진 11살이 된 조카가 방학 후 너무 심심하다며 딸에게 연락이 왔다. 놀아주라고. 그래서 4명 이상 모일 순 없으니 막내를 유치원에 보낸 후에 조카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딸과 조카를 함께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과 잘 놀아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날이었다.

매일 아침 아내와 딸의 차를 준비해준다. 그러면서 나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오늘은 조카의 율무차까지 한 잔을 더 준비했다. 이런 남편이자 아빠이자 이모부는 별로 없을 듯싶다.(나 좀 대단한 듯)


목요일이라 나와 딸의 클라이밍 강습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조카도 일일체험으로 수강료를 내고 함께 하기로 했다. 조카는 예전에 몇 번 경험을 해봤다고 한다. 딸은 이제 가장 높은 곳까지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게 되었고, 조카는 오랜만인지 중간 이상까지 올라가는 건 조금 무서워했다. 그래서 꼭대기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할 때마다 한 칸씩 위로위로 더 도전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아이들은 함께 해서 그런지 중간에 쉬는 타임도 없이 놀면서 즐기면서 더욱 많이 연습을 했다. 강사하고 1:1로 하면 운동 같은 기분인데 함께 하니까 놀이 같은 기분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강습을 받고 점심을 먹으로 나왔다. "뭐 먹고 싶어?" "응. 우동" "중국집 말하는 거야?" "아니 일본식 우동" 그렇게 말하기에 정말 우동이 먹고 싶었나 보다 싶어서 열심히 검색해서 근처 일본식 우동집을 찾았다. 그래서 가는 중 길가에 떡볶이 집이 나왔다. 그랬더니 애들이 떡볶이가 먹고 싶단다. 

"아빠. 떡볶이 먹고 싶어""이모부. 저도 떡볶이 먹고 싶어요"

분명 방금까지 일본식 우동이 먹고 싶다고 해서 열심히 검색해놨더니 이것들이. 결국 차를 돌려 방금 지나쳤던 떡볶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먹고 싶다는 걸 사줘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나도 어렸을 때는 분식집 같은 곳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젠 별로 당기질 않는다. 싫어하진 않지만 다른 먹을 게 있다면 굳이 먼저 먹게 되진 않는다.


오후에는 미술 수업이 있어서 조카도 함께 받기로 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지자체 비용으로 시행해주는 교육인데 애들이 참 재미있어한다. 시골이어도 옛날만큼 아이들끼리 만나서 놀거나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런 교육 프로그램으로 동네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고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기에 참 좋은 정책이고 제도라고 생각한다. 더욱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 방학중인 딸과 거기에 더해 조카까지 잘 돌봐주었고(다치지 않고 놀았으면 잘 돌봐준 거 아닐까 싶다.) 막내가 돌아왔고 조카는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갔다. 다음 주에는 아이들과 조카를 데리고 썰매장에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인한 인원 제한이 조금 풀리길 바라고 있다.


또 이렇게 휴직과 방학 중의 하루가 흘러갔다. 아이와 24시간 붙어있는 다고 해서 매일매일 엄청나게 큰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인지는 모르겠다. 


암튼, 오늘 저녁은 무척이나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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