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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17. 2022

우리 너무 붙어 지내는 거 같은데?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8일째,9일째

- 8일째 -


"자기야, 보일러에 경고등 뜨는데. 기름 떨어진 거 아냐"

전날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 보일러에 에러가 떴다. 그래서 보일러 기름통을 보러 플래시를 들고 뒷마당으로 갔다. "오 마이 갓" 기름통에 기름이 하나도 없다. 1월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진 겨울밤에 보일러가 고장 나다니. 시골이라 이 근처 주유소는 모두 문을 닫았다. 어떻게든 이 밤을 버티는 수 밖엔 없다.


다행히도 방금 전까지 보일러를 돌렸기에 집안 전체는 훈훈했다. 그래서 방에 전기장판과 온수 매트를 틀고 4 가족 모두 이불 덮고 누워 일찍 자기로 했다. 다만 새벽에 추워질 것 같기에, 벽난로에 장작을 집어넣어 두었다. 

새벽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눈을 떴다. 이불 안은 따뜻하기에 애들 자는 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다만 거실을 나갔더니 한기가 가득했다. 바로 토치를 가지고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불이 붙은 지 30분이 넘어가자 거실 전체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벽난로는 주택살이의 허세 물품 중 하나인데 오늘만큼은 정말 설치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9시 주유소 사장님이 집에 기름을 넣어 주기 전까지 열심히 벽난로에 나무를 집어넣었다.


오늘은 둘째를 유치원에 보낸 이후 나는 딸을 데리고, 형은 연가를 내고 조카를 데리고 근처 썰매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 딸과 사촌동생인 조카는 너무나도 사이가 좋다. 나이 차이도 1살이기에 공감대가 맞기에 명절이든 언제든 만나기만 하면 돌아갈 때까지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나와 형은 어느 형제지간과 비슷하다. 일이 없으면 연락하지 않고, 연락하더라도 용건만 간단히. 1분 이상 통화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사이가 나쁘진 않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믿기진 않겠지만.


썰매장을 너무 오래간만에 가봤다. 그래서 처음엔 4명이 다 같이 썰매를 탔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빨라서. 썰매를 타는 건 재미있는데 썰매 타로 올라가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나와 형은 5시간 동안 한 4번 정도 탄 거 갔은데, 아이들은 40여 번은 탄 것 같다. 집에서는 눕거나 앉아만 있으면서 놀 때는 왜 이렇게 체력이 좋은 건지.


그렇게 썰매장에서 썰매도 타고, 놀이기구도 타고, 매점에서 파는 분식들로 점심도 먹고 오후 3시 정도까지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서운해서 더 놀고 싶어 했지만 둘째는 모르게 온 거라서 유치원 끝나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 했다. 혹시라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눈에 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이렇게 열심히 놀고 왔더라도 방학 중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기에 딸은 오전에 못한 피아노, 플룻, 학습지 등 주어진 숙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입이 오리입처럼 삐쭉 튀어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라고 말하며 할 일을 다한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9일째 -


아내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을 참석하여 식사를 할 순 없기에 아내만 예식장에 올라가서 인사만 하고 바로 내려왔다. 근데 요즘은 식사를 안 하고 가는 하객들에게 홍삼진액, 석류즙 같은 건강식품을 주나 보다. 너무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 예전엔 화과자 한 상자를 줬던 것 같은데.

예식장에서 원래는 바로 운동을 하러 가기로 했다. 시간이 11시쯤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침을 토스트 하고 시리얼만 해줘서 그런지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밥부터 먹자고 졸랐다. 그러면서 막내가 짜장밥이 먹고 싶다고 하기에 싫다고 했더니 차 안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린 짜장밥을 먹으러 갔다. 차 안에서 투정 부리며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보단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게 더 쉬운 일이니깐.


다행히 중국요리, 육개장, 국밥 등 모두 판매하는 식당이 근처에 있어서 원하는 메뉴들을 각자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었다. 메뉴가 다행한 건 좋은데 모든 음식이 특출 나게 맛이 좋지는 않았다. 그냥 먹을만했다 정도.


식사 후 우리 가족 모두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원래 아내와 함께 필라테스를 수개월 동안 다녔었는데 어제부로 종료가 되었다. 3개월 단위로 수강증을 끊어야 하는데 내가 복직을 하면 다닐 수가 없기에 그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주말에도 다닐 수 있는 클라이밍을 같이 다녀볼까 하는 마음에 우선 일일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아내와 막내의 첫 경험을 본 나의 감상은 '참 웃겼다'이다. 아내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몸이 잘 안 움직이는 것 같고, 막내는 매달리기는 잘하는데 위로 올라가는 건 무섭단다.


그래도 아내는 땀도 많이 나고 재미가 있었는지 일일체험권 10장을 사고 앞으로 토요일마다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막내는 그냥 노는 수준이기에 어느 정도 잘할 때까지는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그냥 데리고 와서 적응시키라고 해주셨다.


이후 도서관에 들러 이번 주에 읽을 책들을 빌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주말 저녁에 맞게 열심히 예능 프로를 보면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일엔 티브이를 보지 않고(아이들만 종종 만화를 본다) 주말에만 예능 프로를 몰아서 보는 편이다. 그리고 딸은 주말에는 아무런 숙제도 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방학 계획표가 거의 직장인과 동일한 주 5일 9 to 6 안에서만 숙제를 하는 것으로 작성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암튼, 그렇게 우리 4명의 가족이 하루 종일 1m 이상도 떨어지지 않은 채 토요일을 보냈다. 내일은 또 뭘 하면서 24시간 붙어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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