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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18. 2022

힘들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10일째, 11일째

- 10일째 -


아주 긴 2달간의 겨울 방학중 이제 10일이 지났다. 아주 짧은 1년의 휴직 중 10일이 벌써 또 지났다. 일요일인 오늘은 토요일인 어제보다 더욱더 강렬하게 가족들끼리 꼭 붙어있었다. 아주 잠깐 큰딸을 제외하고 근처로 주문한 피자를 찾으러 간 걸 제외하면 정말 한 몸처럼 한 집안에 자발적으로 갇혀(?) 있었다.

오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쌓기 놀이다. 그중 막내가 좋아하는 '스피드 컵 쌓기'를 함께 열심히 연습했다. 막내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보여 준 컵 쌓기가 굉장히 재미있었나 유치원에 컵 쌓기 할 수 있는 재료가 개인당 1개씩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결국 하나 사줬다.


이 컵을 가지고 막내는 수 시간을 컵 쌓기를 했다. 나도 했고, 딸도 했다. 그러다가 시간 재며 시합도 하고 그렇게 꽤 오랜 시간(내 생각에는) 함께 놀았다. 아이들은 오래 놀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같은 시간의 흐름인데 느끼는 건 상당히 다르다.


컵 쌓기로 시간을 보낸 이후에는 동그란 초콜릿 쌓기를 시작했다. 딸이 어디서 들은 건지 5개가 신기록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 번 도전을 해봤는데 2개 이상은 쌓을 수가 없었다. 하도 집중했더니 손끝이 떨려올 때쯤 포기했다. 

컵과 초콜릿을 쌓는 시간을 포함해 아내는 5시간 이상 작은 방에서 편안하게 독서를 했다. 딸은 "배고파"라는 말은 101번을 했으며, 둘째는 같이 놀고 있음에도 불구 자기 차례가 아니면 "심심해. 놀아줘"라는 말을 78번쯤 한 것 같다.


나는 "그만, 조금만 쉬자"라는 말을 179번 했다. 

"아빠, 배고파"

"그만, 아까 먹었잖아. 아빠 좀 쉬자."

"아빠, 놀아줘"

"그만, 방금 까지 컵 쌓고 놀았잖아. 조금만 쉬자"

"아빠, 아빠"

"그만, 그만"


요즘 오은영 박사의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이러한 나의 태도와 대답이 썩 좋은 육아에 맞지 않다는 걸 반성하며 후회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어느 상황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이 '화'와 '욱'의 중간 정도에 항상 위치해 있다. 마음공부가 한 참 덜 된 것 같다. 


오늘도 가정주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침엔 누룽지를 해서 먹였고, 점심은 이벤트로 받은 피자 쿠폰으로 피자와 추가로 치킨을 시켜 먹었으며, 저녁으로는 코다리찜을 해서 먹었다. 세끼 중 내가 만들지 않은 피자와 치킨이 가장 인기가 좋았으며, 내 입맛에도 그것들이 최고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웃음과 더 많은 짜증을 뒤로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 11일째 -


오늘을 딸을 데리고 고창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딸의 할머니이자 나의 엄마인 최여사님이 꼭 방학 중인 손녀 점 심한 번 좋은 곳에서 먹이고 싶다고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유치원에 간 막내와 일을 해야 하는 와이프를 빼고 둘이 1시간 20분을 달려 고창으로 갔다.


구름이 조금 끼긴 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렇게 춥게 느껴지는 날씨는 아니었다. 가는 길에는 딸과 별 다른 대화를 하진 않았다. 딸이 뒷좌석에 앉아서 잠을 잤다. 나는 운전을 했다. 


그렇게 고창에 도착해서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말 많은 우리 딸은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아주 큰 목소리로 재잘재잘 하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 있던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명랑한 우리 딸의 성격이 너무 좋다.


그렇게 본인이 학교 전교 부회장에 당선된 일과 숙제가 많아서 불행하다는 말을 2번째 반복하려 할 때 내가 식당으로 나가자고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고창 상하농원이다.

상하농원 안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두 있기에 오늘 점심은 이곳에서 모두 해결하기로 했다. 상하농원에 도착해서 우선 소와 양 그리고 토끼를 보며 산책을 했다. 꽃이 피어있지 않은 겨울에 와도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엄마는 고창에 살지만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는데 왔더니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 

다음 주 친구들 모임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을 정도이다. 엄마도 좋아하고 딸은 동물 먹이주기 체험까지 할 수 있어 더 좋아했기에 이곳을 선택한 나도 좋았다. 그렇게 농원을 좀 걷다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도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주문한 모든 메뉴가 맛있었고 계산을 엄마가 해서 더욱 맛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이 아닌 남이 만들어 주는 음식 거기에 내 돈이 들어가지 않는 식사는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농원 안에 있는 발효공장, 빵공장, 과일 공장 등을 돌아보며 소화를 좀 시키고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 창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예쁜 함박눈이었다. 잘 가꾸어진 농원에 떨어지는 하얀 눈이 오늘의 만남을 더욱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엄마가 싸주신 국과 각종 반찬을 한 아름 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반찬들은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서 저녁에 차려줬더니 아내가 너무 맛있게 먹었다. 


총 4시간 정도의 운전이 힘들긴 했지만 따뜻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내 기억에 저장될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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