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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23. 2022

아이 4명을 돌보게 된 날

휴직 중 아빠와 방학중 딸 - 8 (14일째, 15일째)

- 14일째 -

너무나도 평이한 하루였다. 일어나고, 밥 먹고, 운동 가고, 또 밥 먹고, 숙제하고, 놀다가 또 밥 먹고, 책 읽고 잤다. 특이 사항이라면 오늘 유치원에 간 막내가 총 3명의 원생 중 2명이 오지 않아 초등학생 형들과 놀다가 12시에 집에 왔다는 것 하나뿐이다. 


분명 오늘도 남들과 똑같은 24시간을 살았는데 막상 내가 한 것들을 글로 쓰니 한 줄밖에 되지 않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1초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만 살면 나중에 죽을 때 돼서도 인생을 한 줄로 모두 표현하게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굉장히 씁쓸할 것 같다. 아무래도 뭔가를 좀 더 해야겠다.


- 15일째 -

지난주에는 나, 딸, 형, 조카 이렇게 4명이 썰매장을 갔었다. 이번 주에는 나, 딸, 아들, 처제네 딸, 처제네 아들 이렇게 아이 4명을 데리고 썰매장에 갔다. 내가 휴직 중이고 아이들이 방학일 때 어디라도 한번 데려가서 놀게 해주고 싶었고 오늘 그것을 실행해보았다.


처제네 딸은 15살이고 아들은 11살이고, 우리 딸은 13살, 아들은 7살이다.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모두 섞여 있는 애들을 데리고 가야 하기에 티는 내지 않았지만 걱정이 조금 되기는 하였다. 그 걱정은 우리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현실이 돼가는 것 같았다.


15살인 중학생이자 중2에 올라가는 감정의 기복이 하루에도 12번씩 왔다 갔다 하는 조카가 졸려서 못 갈 것 같다고 처제를 통해 연락이 왔다. 제일 큰 아이였기에 보조 삼아 아이들 돌보는걸 좀 넘기려 했더니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우리 집에서 30분을 달려 처제네 집으로 향했고 둘째 조카를 내려오라고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또 무슨 변덕인지 첫째 조카도 같이 내려왔다. 놀고 와서 저녁에 들은 애기로는 썰매장을 가지 않으면 아침부터 엄마랑 공부를 해야 하는 걸로 되어 있었나 보다. 그 공부를 하지 않기 위해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내려온 것이었다. 공부보다는 역시 노는 게 좋지.

그렇게 썰매장에 도착했고, 입장 하자부터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가장 막둥이인 우리 아들은 처음 보는 썰매장 광경에 너무 놀라고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너무너무 잘 놀았다. 아빠를 찾지도 않고, 누나들이나 형이 보이지 않아도 혼자 줄 서고 썰매 타고 내려오고 또 혼자 썰매 끌고 위로 올라가서 타고 내려오고 '이제 다 컸구나'란 생각을 하며 한참을 막내 혼자 노는 걸 보고 있었다.


가장 큰 아이인 중2 학생께서는 오전에 두 번 타고 내려오더니 야외 평상에서 누워서 나랑 수다를 떨었다. 피곤해서 썰매는 못 타겠고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며 노는 게 좋으시다고 한다. 요즘 중2는 이런가 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고 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어쩔 땐 나보다 세상을 더 시크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요즘 중2에게는 무슨 일들이 있어서 그런 건지 감조차 못 잡겠다.


중학생을 제외한 초등학생, 유딩 3명은 열심히 썰매를 타고 있다. 쉬지도 않는다. 그렇게 2시간 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매점에서 라면, 떡볶이, 만두, 삶은 계란, 핫도그를 먹고 오후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중2 학생께서도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이때부터 집에 가는 오후 3시까지 한 번을 쉬지 않고 애들하고 썰매를 수십 번 타고 근처에 있는 수많은 놀이기구 타면서 오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놀았다. 밥 좀 먹었다고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나 싶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더니 한 겨울에 패딩, 장갑, 모자를 모두 벗어던지고서도 덮다고 난리들이었다.

열심히 놀고 조카들 오후 영어 학원 수업에 늦지 않도록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딱히 고생한 건 없지만 처제에게는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고, 장모님에게는 '이런 이모부가 세상 어디 있냐'며 또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휴직 중 가장 잘했던 일 5가지를 뽑으라면 조카들과 함께 놀아준 오늘은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뿌듯하고 즐겁고 많이 웃을 수 있는 하루였다. 근데 다음에 또 가라면?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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