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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21. 2022

크게 뭘 한건 없는데 이상하게 바쁘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12일째, 13일째

- 12일째 -


"밥 먹자. 다들 나와!" 나의 이 말과 함께 우리 가족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제 딸의 방학이 2주 정도 흐르고 같은 요일이 2번 이상 돌아오다 보니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가고 있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막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 정리(설거지, 청소, 빨래)를 시작하면 그때 딸은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10시쯤 운동을 하러 간다.

실내 클라이밍장에 도착해서 강습과 자체 연습을 90분 정도 하면 12시간 된다. 그때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집에 들러 와이프를 데리고 다시 시내로 나와서 국수를 먹고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와이프 은행일 등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갔는데 딸아이가 자기 숙제할 시간 줄어든다고 뭐라 뭐라 했던 것 같다. 너무 길게 말하기에 딴생각을 했더니 정확한 워딩이 생각나진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45분간 플룻 연습을 해야 하는데 딸아이 말처럼 시간이 부족해서 아주 잠깐 플룻을 연습했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동네 아이들과 미술 강습이 있는 날이기에 3시부터 2시간 동안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딸이 그림을 그리는 중간에 막내가 유치원 선생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나는 막내랑 조금 놀아주다가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블로그와 유튜브를 뒤진다. 분명히 말하지만 노는 게 아니다. 저녁 준비의 일환이다.


저녁 준비하는 동안 미술 강습이 끝이난 딸과 아들은 씻고 레고를 가지고 한 참 사이좋게 논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는 다시 집안 정리를 한다. 아침을 먹은 후 저녁을 먹기 바로 직전까지 와이프는 일을 한다. 그렇기에 평일 낮에 와이프에 대해서는 쓸 말이 없다. 재택근무자이지만 쉬는 시간 없이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란 걸 충분히 알고 있다.


저녁 먹은 후 딸은 문제지를 풀고 막내는 "나 심심해. 놀아줘"라며 같이 놀아 줄 1명을 끈질기게 찾는다. 딸이 문제지를 다 풀면 채점을 해주고 8시부터 독서를 시작한다. 이때 막내의 책은 거의 와이프가 읽어준다. 내가 읽어주면 재미가 없다고 한다. 일부러 그렇게 읽어 주진 않았다. 정말 열심히 읽어 주는데도 그렇게 엄마만 찾는다. '기특한 것'


한 시간 가족 독서 시간이 지나면 막내는 졸리다며 재워달라고 한다. 그때부터 가족 모두 30분 정도 잠자리에 들 정리를 한다. 그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며 우리 가족의 무탈한 하루가 마감이 된다. 우리 가족은 모두 10시 이전에 잠에 든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거의 새벽 4~5시에 일어나 각자 할 일을 한다. 아내는 아침 시간 대부분 독서를 하고, 난 글 쓰는 법 강의를 듣고 글을 쓴다. 각자 다른 방에서 하기도 하지만 암묵적으로 아침을 먹기 전까지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 말을 걸거나 신경 쓰이는 행동들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하고 언젠가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며 또 그렇게 하루를 마감한다. 


- 13일째 -


"제발, 조용히 좀 말해줘. 다 알아들어"

"싫어. 크게 말할 거야. 우아~~~~"

우리 딸은 기분이 좋을 때나 화가 났을 때나 그도 아닌 평상시에도 항상 목소리 톤이 높다. 그것도 굉장히 높다. 그리고 빠르다. 그렇기에 종종 단어 선택에 실수가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클라이밍장에서 관장님과 대화할 때에는 톤이 그렇게 높지 않다. 말도 빠르지 않고 되게 상냥하고 귀엽게 말한다.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도 비슷하다. 그런데 집에서 말할 때나 할머니, 할아버지랑 통화할 때에는 한창 고조되어 있는 크고 빠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엔 천상 연기자 같다. 어떻게 밖에서와 안에서의 갭 차이가 이렇게나 클 수가 있나 싶다. 


"관장님 저 오늘은 뭐해요?"

"오늘은 노란색만 잡고 올라가 봐"

"앙~~ 힘든데. 잉! 못하겠어요. 헤헤"

클라이밍장에서 우리 딸이 가장 많이 하는 대화다. "잉~~ 힘든데" 집에서였다면 엄청 큰 목소리로 "힘들어. 안 해~~~ 못한다고!!!" 이랬을 텐데. 가식적인 딸내미 같으니라고.

방학 때 점심은 직장인의 점심을 맛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단 둘이 밖에서 사 먹기가 쉽지 많은 않다. 아내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집에 재택근무하며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데 둘만 맛있는 걸 먹고 가기에는 좀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도시락을 사 가지고 가기로 했다. 딸은 당연하게도 엄청 좋아한다. 미리 인터넷으로 한솥도시락 메뉴를 고르고 전화 예약 후 음식을 찾아 집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딸이 한 가지 메뉴를 말했는데 

"넌 음식을 보고 고르는 거야. 아님 금액을 보고 고르는 거야? 어떻게 제일 비싼 것만 고를 수 있지?"

"아빠. 방학 때 내가 다른 건 안 도와줘도 돈 쓰는 건 엄청 많이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

엄청 걱정된다. 다행히 다시 메뉴를 교체하긴 했지만 세 개의 메뉴 중 가장 비싼 건 딸내미 것이었다.


아내는 밖에서 먹고 올 줄 알았는데 도시락을 사 온 걸 보고 "뭘 이런 걸 사와?"라고 하면서도 본인을 신경 써준걸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되지. 새침하시기는'


그렇게 맛있는 점심도 먹고 오후에는 또 열심히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데 밖에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돌아온 막내와 딸은 신이 났다. "와~ 눈 엄청 많이 온다. 더 많이 와서 1m 쌓이면 좋겠다"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출근하지 않는 시절에 내리는 눈을 보는 건 참 기분이 좋다. 멋있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따뜻하기도 하고 나도 눈이 많이 쌓이길 바랬다. 하지만 바닥을 조금 덮는 정도에서 눈이 그쳤다. 나도 다시 복직해서 출근하면 이 눈이 싫어지겠지만 지금의 기분 좋은 상황을 최대한 누려보려 한다.


'내일은 눈이 엄청 많이 쌓여서 집 앞에서 썰매 타고 놀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딸의 기도에 나의 기원도 살짝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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