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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25. 2022

어른이와 어린이가 함께 노는 방법

휴직 중 아빠와 방학중 딸 - 9 (16일째, 17일째)

               - 16일째 - 


또다시 시작된 48시간의 주말. 휴직 중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주말이 빨리 돌아오는 것 같다. 아니면 휴직 기간이 줄어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전엔 아내 독서모임이 있어서 데려다주고 나는 아이들을 돌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둘이 사이가 좋은 날이어서 둘이 잘 노는 걸 한발 떨어져 지켜보고 있었다. 항상 이렇게만 사이가 좋았으면 바랄 게 없다.

그리고 점심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근처에 일정이 있어서 오셨다길래 집으로 모셔 함께 식사를 했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서 대접하는 것보다 맛있는 식당 음식을 대접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자탕과 문어 아귀찜을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었다.(내가 음식을 만들기 싫어서 그런 결정을 한건 절대 아니다.) 음식은 당연하게도 무척 맛있었다. 


그리고 근처에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차를 한잔 했다. 동남아 휴양지 풍의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였다. 장모님이 특히 좋아하셔서 모시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차를 한잔 하시고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운동을 하러 갔다.


아내는 오늘이 두 번째 클라이밍 강습이었다. 여전히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걸 무서워 하긴 했지만 첫날 보단 많은 발전이 있었다. 무서워서 포기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다며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 모습을 봐서인지 7살짜리 막내도 지난번 보단 한 칸 더위로 발을 내딛기도 했다.

역시 할 수 있다며 옆에서 말로 응원해 주는 것보다 부모가 먼저 보여주는 게 훨씬 아이들을 자극시키고 도전하게 하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난 후 최근 개업한 L마트 맥스라는 곳을 방문하고자 했다. 

"사람 뭐 얼마나 있겠어?"란 가벼운 생각으로 갔으나 결국 건물 외곽만 한 바퀴 돌고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주차하는데만 40분이 더 걸릴 거라는 안내요원의 말을 듣는 순간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트 하나 리모델링했다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오는구나 싶었다. 하긴 나도 궁금해서 딱히 살 것도 없지만 가보려고 했으니 사람 마음 다 똑같나 보다.


그래서 마트는 가지 못하고 대신 막내와 아내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머리 자르는 동안 나는 딸과 미용실에 같이 들어가진 않고 근처 길거리에서 붕어빵과 어묵을 먹고 작은 슈퍼마켓 구경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1시간을 기다렸다.


멀리 나가진 않았으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운전을 꽤나 많이 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발목이 조금 아파왔지만 돌아다닌 만큼 지루하지 않게 무언갈 많이 해내기도 했기에 부지런히 잘 살았던 날인 것 같다.


                  - 17일째 - 


오후 3시에 지자체에서 시행한 어른이와 어린이를 위한 '오행 오감 겨울 놀이터'에 참석했다. 1,000평 정도 되는 논 한쪽에는 진흙을 쌓아놓았고, 다른 쪽엔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고, 한가운데에는 대나무로 게르를 만들어 놓고, 한쪽에는 장작 패는 도끼와 삽 등이 놓여 있는 놀이터(?)였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이걸 하기 위해 10 가족이나 사전 신청을 통해 모집하였나 싶었고, 여기에서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보내야 하는데 대체 뭐 하며 보내지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 즐겁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진흙을 파고, 뿌리고, 물을 뿌려서 성을 만들고, 진흙 구덩이 위에서 미끄럼틀을 탄다. 아이들의 힘으로도 쉽게 장작을 팰 수 있는 스프링 도끼로 여러 번 장작을 팬다. 쌀 수확 후 마시멜로처럼 지푸라기를 말아놓은 하얀색 물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물체를 굴리고 위에 타고 밀어준다. 다빈치 다리라 불리는 나무로만 만든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게르 안에 들어가 연을 만들고, 논바닥에서 연을 날리기 위해 달리다 논바닥을 구른다. 아프지는 않고, 그냥 웃음만 나온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껴안고, 뒹굴고 소리치고 굴러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같이 참석한 조카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빠가 가장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 같아"


그리고 벽돌로 대충 쌓아놓은 화로에 아이들이 파이어 스틱을 이용해 불을 지핀다. 그리고 본인들이 쪼갠 장작으로 불을 크게 피운다. 그 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호떡도 구워 먹고, 떡도 구워 먹고, 쥐포도 구워 먹고, 라면까지 끓여 먹는다.

그리고 캄캄해진 밤 밝게 빛나는 수 없이 많은 별 아래에서 쥐불놀이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일일 테다. 일부 어른이들도 쥐불놀이를 보기만 했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빈 깡통에 숯과 짚을 넣고 열심히 돌린다. '훅, 훅'소리와 함께 불이 동그란 원을 그린다. 


나도 30여 년 만에 다시 돌려보며 아이에게 방법을 알려주었다. 신기했다. 어렸을 적 겨울철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돌렸던 깡통을 다시 내 아이들이 돌리는 걸 보며 옛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5시간. 지루함은 1초도 느끼지 못하고 아이처럼 아이랑 같이 뛰어놀았다. 별다른 게 없어도, 돈을 쓰지 않아도, 좋은 물건을 사주지 않아도 아이와 즐겁게 노는 방법은 있었다. 다시 한번 그걸 깨달았다.


아이가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놀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소리치고, 손을 잡고, 껴안고, 뒹구는 것이었다. 내 아이들과 함께 미친 듯이 뛰고 웃을 수 있는 하루를 선물처럼 받게 되었다. 


오늘 이 시간은 나에게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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