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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27. 2022

자녀 공부 부모가 가르치면 안 돼요

휴직 중 아빠와 방학중 딸 - 18일째, 19일째

- 18일째 - <참 다행인 하루>


월요일 아침. 막내 유치원 등원을 시키기 위해 옷을 입고 이제 막 막둥이 손잡고 문 밖을 나가려 할 때 아내 휴대폰이 울렸다.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오늘 학교 전기가 안 들어와서 교실이 추우니깐 우선 보내지 말아 주세요. 조금 있다 연락드릴게요?"라는 전화였다. 준비까지 다 마친 마당에 갑자기 등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휴직 중이니깐. 만약 출근길에 이런 소식을 듣게 되었다면 정말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휴직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아이들의 어떤 상황에도 쉽고 빠르게 반응해 줄 수 있다는 것.


갑자기 열이 나서 병원에 가야 할 때, 울고불고 떼쓰며 학교 가기 싫다고 버틸 때, 비나 눈이 많이 내려 운전이 힘든 상황일 때, 오늘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로 학교를 가지 못할 때에도 크게 고민되지 않는다. 나와 함께 하면 되니깐.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고, 학교 가기 싫다 하면 "오늘 아빠랑 집에서 놀자~"라고 말하면서 그냥 놀면 되고, 날씨가 안 좋으면 "우리 날씨가 좀 좋아지면 그때 학교 갈까? 그때까지 아빠랑 집에 있자"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갑자기 유치원 사정으로 등원을 못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딸과 아들 모두 나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주말에 꼭 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지 못했던 마트를 오픈 시간인 10시에 맞춰서 가기로 했다. 근처에 새로 생긴 창고형 마트였다. 아이들과 이곳저곳 열심히 구경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사다 보니 10만 원이 훌쩍 넘게 장을 보게 되었다. 창고형 마트가 우리 가족처럼 조금씩 자주 사다 먹는 걸 선호하는 성향에겐 별로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 했고 재미있게 과소비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막내까지 데리고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다행히도 관장님이 아이를 놀게 해 주셨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나와 딸이 강습을 받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막내도 이것저것 하면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벽을 잡고 연습하는 걸 보니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더욱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다.

운동 후 점심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만 구성된 '얌스'를 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류의 식당을 잘 찾진 않는데 아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다. 집에서는 낼 수 없는 자극적이며 당기는 맛을 느끼니 아이들은 너무도 좋은가보다. 그 말 많던 딸조차 먹는데 정신이 팔려 열심히 먹기만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점심 식사 시간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재택근무 중인 아내를 빼놓고 다니는 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아내도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만약 내가 휴직 중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런 상황에 오늘처럼 막내가 유치원을 가지 못하게 되었더라면 아내는 회사일에 아이들 돌보는 것까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휴직기간이 끝나감을 가장 아쉬워하는 것도 아내이다. 


오늘 하루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휴직 중이라 여러모로 참 다행인 하루'였다고 표현하고 싶다. 


- 19일째 - <자녀 공부는 전문가에게>


딸은 매일 국어와 수학 문제지를 푼다. 그리고 내가 채점을 한다. 이 모든 걸 합한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긴 시간에 수 없이 많은 감정이 생겨나고 사라지며 오고 간다. 오늘도 딸이 푼 문제지의 채점을 한다. 한 문제 한 문제 할 때마다 짜증과 화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채점을 모두 마치고 "야! 이리 와 봐! 여기 앉아. 넌 이것도 못 푸냐?"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최근에 오은영 박사의 '욱하는 부모, 못 참는 아이'를 읽으며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아이 공부를 가르치면서 '욱'하는 부모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아이가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을 봤을 때 '욱'하는 마음이 생기는 부모라면 자녀 공부를 직접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쉽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이런 것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라는 소리가 생각보다 먼저 말로 튀어나온다.


그렇다고 시골이라 주위에 학원도 없는데 멀리 까지 떨어진 학원을 보내기는 싫고, 아이도 가기 싫다고 한다. 만약 근처에 있다 하더라도 굳이 사교육에 기대어 학업 수준을 끌어올릴 생각도 없다. 공부는 자기가 원할 때 스스로 하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내가 원하는 어느 정도까지의 학습능력이 있길 바란다. 나 자신이 굉장히 이율배반적인걸 알고 있다. 

오늘도 너무나도 쉬워 보이는 수학 문제를 여러 개 틀렸다. 그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대충 하다가 뻔히 아는 곱셈을 틀린 것이다. 그래서 구구단을 처음부터 글로 써서 다시 외우라고 했다. 이미 알고 있는 거라 필요하지도 않은 건데 순간의 감정으로 또 '욱'하고 화를 내고 큰 소리로 채근하듯이 가르치고 말았다. 이건 가르친 게 아니라 그냥 내 감정을 내뱉은 것뿐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다음날 틀린 문제가 있으면 또 화를 낸다. 끝이 없다.


그래서 이번 방학만 끝나면 절대 내 아이의 공부를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방학에도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시작했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며 끝은 내야 할 거 같다. 


모든 일에는 그 일에 적합한 전문가들이 있다. 학업에는 학교 선생님과 학원 강사 같은. 직접 하려면 문제지를 풀었는지에 대한 체크 정도로만 끝내야지 '어떻게든 이 문제 풀이 방법을 정확하게 너에게 주입해 줄 거야'라는 마음은 이제 포기해야겠다.


그래야 나와 딸 모두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학교를 믿고 나를 내려놓아야겠다고 글을 쓰며 또 한 번 다짐한다.


근데.... 아~~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난 분명히 내일도 화를 낼 것이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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