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Jan 29. 2022

먹는 게 남는 거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20일째, 21일째

- 20일째 - <먹는 게 남는 거>


"아빠, 우리 점심 뭐 먹어?"

"이제 아침 차리고 있는데, 뭔 점심을 벌써 물어봐?"

"라면 먹으면 안 돼? 아니 아니 떡볶이 먹자. 응?"

우리 딸은 너무 잘 먹는다. 하루 중 나와 하는 수많은 말들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먹는 이야기이다. 

"아빠, 1년 내내 라면만 먹고살고 싶어"

"아빠, 1년 내내 떡볶이만 먹고살면 안 돼"

"아빠, 뷔페 갈까? 조개 무한리필 집 있던데? 국밥 먹을까?"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집에서 밥 먹으면 안 될까?"


최근 형과 조카를 만났는데 우리 딸보다 1살 어린 조카 애도 라면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하루 세끼 라면만 먹고 싶다고 하도 때를 쓰길래 어느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라면만 끓여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카에게, "라면만 먹으니깐 좋아? 그렇게 맛있어?"

"네. 맛은 있었는데요. 하루 종일 먹으니깐 다음날은 먹기 싫었어요"

"그래. 이제 질려서 라면 먹기 싫지?"

"아니요. 그냥 하루에 세 번 먹는 건 질리는데요. 하루 한번 먹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딸도 하도 먹고 싶다고 하길래 하루 세끼 원하는 것만 먹여볼까도 했는데, 아직 해보진 못했다. 라면이나 떡볶이를 하루 세끼 먹게 해 줄 순 있을 것 같긴 한데 해도 되는 건지? 결정을 못하겠다. 아내는 당연히 허락해 주지 않을 것 같고, 나도 아이가 원한다고 무조건 해주자니 뭔가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라면을 좋아했다. 그런데 대학 때 자취를 하면서 요리도 못하고, 돈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매일 같이 라면만 주야장천 먹으면서 몇 년을 살았더니 이젠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정도로 되어 버렸다. 나이가 변하면 입맛도 당연히 변할 테니 지금은 지금 먹고 싶다는 걸 최대한 해주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고민이 된다. 먹고 싶어 하는 게 시금치나 콩나물이라면 매일 해줄 수 있겠지만 라면이나 떡볶이는 좀.

그렇게 고민과 투정과 설득의 협상 과정을 거쳐서 오늘 딸이 고른 점심 메뉴는 곰탕이었다.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라면에서 떡볶이를 거쳐 곰탕까지 왔는진 모르겠지만 내 맘에 쏙 든 메뉴 선정이었다. 

"딸, 너무 맛있다."

"거봐. 내가 먹자는 거 먹으면 된다니깐. 내일은 떡볶이 먹자"

"그러자. 뭐 결국 먹는 게 남는 거지 뭐"


- 21일째 - <그래서 떡볶이>


등록 이후 거의 매일 클라이밍장을 딸과 함께 출석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데 너무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도 자꾸 가고 싶어 진다. 오늘은 기존에 안 했던 새로운 걸 배웠는데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쉬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오전 10시 30분쯤 시작한 운동은 12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아빠, 떡볶이 먹으러 가자. 너무 배고파!"

"아빠는 떡볶이 안 좋아한다니깐"

"괜찮아. 아빤 딴 거 먹어. 떡볶이는 내가 먹을게"

"... 알았다. 가자"


그렇게 우린 어제 약속한 대로 떡볶이 집에 왔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딸이 먹고 싶다니 클라이밍장에서 나오기 전 폭풍 검색으로 근처에 최근 핫하다는 집으로 찾아왔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시설이 깨끗해서 맘에 든다.

오늘 주문 메뉴는 밀떡볶이, 어묵, 모둠튀김, 순대, 그리고 사이다였다. 결론적으로 음식은 참 맛있었다.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 이 식당 떡볶이는 나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시장 골목 구석 어디쯤에서 할머니가 혼자 장사하시던 분식집의 그 맛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추억의 맛이랄까.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 맛이 딸에게도 굉장히 좋았나 보다. 

"아빠, 앞으로 떡볶이 먹으려면 이 집만 와야겠다. 너어~~ 무 맛있어! 최고야!"


2~3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세트였고 내가 많이 먹질 않았기에 딸이 먹어야 될 양이 꽤나 많았는데도 불구 그릇을 싹싹 비웠다. 중간쯤 먹었을 때 어묵 하나만 더 시켜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하나씩은 안 팔고 3개를 한 세트로 파니까 좀 많을 것 같은데. 그냥 시킨 거 다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꽤나 서운했나 보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 아빠가 어묵 하나 더 사달랬는데 안 사줬다. 나 배 하나도 안 불렀는데" 이제 우리 딸 먹는 양은 내가 알고 있던 그 기준이 아니었나 보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2,500원 그거 별거 아닌데 남더라도 더 사줄걸 그랬다.


'딸, 미안해.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그땐 시켜달라는 데로 다 사줄게. 쏘리~~'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당장 내일 또 가자고 할까 봐 속으로만 삼켰다.


암튼, 이것저것 잘 먹어서 좋다. 



이전 10화 자녀 공부 부모가 가르치면 안 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