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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02. 2022

그렇게 말하면, 아빠 서운하다.

22일째, 23일째

- 22일째 - "내가 오늘 너 한번 꼭 울린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루 쉬는 날이다. 잘 안 하던 운동을 딸내미 시키려고 시작했다가, 요즘은 재미 붙인 딸한테 매일 끌려나가고 있다. 오늘은 "근육도 하루쯤 쉬어줘야 몸이 안 아프고 더 건강해지는 거야"라는 나의 말이 딸한테 잘 먹혔다.


운동을 안 가니 오전에 시간이 여유로웠다. 그래서 설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우리 집으로 오시는데 그날부터 너무 추워진다고 하기에 벽난로에 불을 지펴야 될 것 같아서 장작을 해놓기로 했다. 아침 집안 청소가 끝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가 열심히 장작을 팼다.


오랜만에 운동을 쉬는 날인데 도끼질 몇 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도끼질은 참 어렵고 힘들다. 그렇게 테라스 한쪽에 장작을 쌓아놓고, 벽난로에 불만 붙이면 될 수 있게 장작을 예쁘게 쌓아 놓았다. 장작을 나르던 중 딸에게 좀 도와달라고 했다.

"아빠, 나 문제지 풀고 있잖아"

"조금 있다가 풀고 나무좀 나르지"

"뭬~~. 어쩔티비"


 요즘 무슨 말만 했다 하면 마지막은 "어쩔티비"라는 말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어쩔티비가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 이름인 줄 알았다. 오늘은 나도 한 마디 했다. "내가 오늘 너 한 번은 꼭 울린다". 그리고 아내한테 혼났다. 우리 귀한 딸에게 왜 그러냐며. '쳇. 딸한텐 뭐라고 안 하더구먼 나한테만 그러네'


늦은 밤 잠에 들 때까지 결국 딸을 울리지는 못했다. 딸은 이제 웬만한 놀림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단련이 되어있었다. 예전엔 조금만 놀려도 너무 많이 울어서 문제였는데, 이젠 반대로 나를 놀리고 울릴 정도로 너무 커버렸다. 

'네가 커서 좋은데, 빨리 커가는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하다' 



- 23일째 - "그렇게 말하면, 아빠 서운하다"


토요일은 우리 가족 4명 모두 함께 클라이밍을 하는 날이다. 오전에 잠깐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바로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아내와 딸은 열심히 오르락내리락하며 땀을 흘리지만, 아들은 아직 위로 올라가는 게 무서워서 관장님이 잠깐씩 교육해주는 거 이외에는 나와 거의 붙어있다.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손을 잡고 클라이밍을 해보거나 아니면 2층에 올라가서 끈으로 만든 그네를 탄다. 그 그네도 내가 만들어주고 흔들어주고 아내와 딸이 끝날 때까지 붙어서 최선을 다해 놀아주었다.


운동 후에는 간단히 콩나물국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주말이니 오랜만에 티브이도 보고 저녁은 간단하게 라면도 먹으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 이후 책을 읽던 중 사고가 났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에 아들이 계속 위험하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더니 어느 순간 '쿵'하고 떨어졌다. 다치진 않았다. 그래서 "그러니깐 조심해야지. 왜 자꾸 위험하게 놀아!"라며 한 마디 하는 순간 아들은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다치지도 않았고, 위험하게 노는 거에 대해서는 한 번쯤 훈계를 해줘야 할 것 같았기에 딱히 달래주지도 않고 울게 놔두었다. 내가 달래주지 않아서 인지 바로 엄마한테 가서 한참을 더 울다가 엄마가 읽어 주는 책을 들으며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한참 웃고 떠들더니 졸리다며 재워달라며 다시 나에게 왔다. 아들은 항상 내 품에서 자고 있다. 새벽에 내가 4~5시쯤 일어나서 작은방으로 가면 졸린 눈을 비비며 찾아와 다시 재워달라고 한다. 그 정도로 잠잘 때만큼은 나만 찾는 아이이다. 그래서 오늘도 이불에 누워 재우려고 하는데 아들이 내 베개를 저 멀리 던지면서

"아빠, 나 재워만 주고 저쪽으로 가서 자. 오늘은 엄마랑 잘 꺼야. 알았지. 나 잠들면 저리 가"

"알았다. 너만 재워 주고 저~~ 기로 가서 잘게. 얼른 자"

그렇게 품에 안아 토닥거리며 잠을 재웠다.

잠든 아이 얼굴을 보니 아까 울렸던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방금 들었던 말에 실소도 나오면서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렇게 말하냐. 서운하게. 어차피 아빠랑 아침까지 같이 잘 꺼면서'

결과적으로 아침까지 내 품에서 푹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는 어젯밤 나한테 했던 이야기들은 기억도 못하는지 나를 꼭 껴안으며 "아빠, 가지 마. 계속 여기 있어"라고 말한다.


7살짜리 애기 말에 내 마음만 서운했다 좋았다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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