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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04. 2022

2022년 설날도 그렇게 지나갔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26, 27일째

- 26일째 - <이번 명절도 잘 끝났다>


설 당일 오후부터는 항상 처가댁에서 명절을 보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 전체가 모이긴 어렵기도 하고 해서 우리 집으로 부모님을 모셨다. 그리고 항상 음력 설날이 장인어른 생신이라 설과 생신을 함께 챙긴다.


우리 집에서 명절을 보내긴 하지만 1박 2일 동안 먹을 모든 음식은 장모님이 전부 다 챙겨 오셨다. 집에서는 그냥 단순히 데워서만 먹으면 되는 정도로 김치, 여러 가지 나물과 전, 고기부터 각종 선물세트까지 한 차가 득 실고 오셨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요리와 많은 양을 가져오실 줄 알았으면 우리가 처가댁으로 가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많이 가져오셨다.


5시가 되기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소고기도 굽고, 꽃게탕, 대구탕, 각종 전과 나물로 1차를 하고, 2차로 과일을 먹고 아이들은 3차로 컵라면까지 먹었다. 밤 10시가 넘을 때까지 먹고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명절과 생신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도 전혀 줄어들지 않은 음식들을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먹은 후 입가심으로 과일까지 먹은 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지낸 설날이 지났다. 그렇게 부모님은 다시 댁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전업주부 모드로 접속해서 집안 정리, 청소, 빨래를 시작했다. 우리 집 로봇청소기가 한 2시간은 넘게 열심히 온 집안을 돌아다닌 이후에야 모든 정리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 이후 아내와 나 그리고 막둥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은방 좁은 침대에서 껴안고 낮잠을 잤다.


꿀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제야 명절이 모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땐 즐겁기만 했던 명절이 이제는 걱정되는 날들이다. 부모님과 아이들 용돈은 얼마를 드릴 것인지, 이번 명절엔 어떤 음식을 해서 먹을 것인지, 먹는 시간 말고 다른 시간에 뭘 할 건지 같은 걱정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막상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고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던 시간들이지만 그래도 명절이 마냥 기쁘지 않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버린 게 씁쓸하다. 


언제쯤 다시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까? 암튼, 이번 명절은 아무 문제없이 잘 끝나서 다행이다.


- 27일째 - <딸과 떡볶이>


"아빠, 떡볶이 먹고 싶어?"

"안돼!"

"왜, 안돼?"

"명절 음식이 냉장고 한 가득이다. 이것부터 좀 먹고 뭘 사던지 해 먹던지 해야 하지 않을까?"

"싫어. 떡볶이 해줘"

"안돼"


내 기억으로는 오늘 이 대화만 5번 이상은 한 것 같다. 양쪽 집에서 싸가지고 온 명절 음식이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그리고 냉동실에 가득 차있다. 더 이상 무언가가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잡채, 각종 전, 갈비, 떡국떡, 육개장, 곰탕, 소고기, 오징어무침, 젓갈, 그리고 5가지의 나물들에 양쪽 집에서 명절이라고 담근 김치들까지. 최소 5일은 명절 음식만 먹어야 상해서 버리는 일 없이 잘 먹을 수 있을 양이다. 그런데도 계속 떡볶이만 찾고 있다. 


당연히 사줄 수도 있고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라는 것도 딸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해서 나도 억지를 조금 부렸다. 오늘 하루는 이 억지를 유지해 볼 생각이다. 내일도 원하면 사줘야지 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렇다고 딸이 오늘 하루 밥을 안 먹었거나 맛없게 먹은 끼니는 단 한 끼도 없다. 아침에 소고기를 구워줬고(냉동해놓으면 맛없어지니깐 바로 먹기 위해서), 낮에는 육개장과 잡채, 각종 전들을 덥혀 주었고, 저녁에는 갈비를 해주었다. 모든 끼니마다 딸은 두 그릇 이상씩을 먹었다.


그렇게 먹었고 간식으로 사과, 귤, 젤리 등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었고 줄 때마다 아기새처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그렇게 먹었으면서도 아니 먹는 중에도 끊임없이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노래를 부른다.


아. 정말 지겨운 것. 하지만 나도 결심한 게 있으니 오늘은 유치하지만 떡볶이를 해주지 않고 버텨냈다. 그런데, 내일부터는 또 방학 중 일상처럼 딸과 나만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붙어 있게 될 텐데 떡볶이를 안 사주고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딸, 다시 한번 말하는데 아빠는 떡볶이 안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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