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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07. 2022

돼지의 배를 갈라 떡볶이를 사 먹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29일째

- 29일째 - <돼지의 배를 갈라 떡볶이를 사 먹다>

아이들이 설날에 받는 세뱃돈을 증권 계좌에 입금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은행을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돼지저금통에 있는 돈도 같이 입금해줘"라고 명령을 했다.


그래서 나는 큰아이에게 하청을 줬다. 

"딸, 아빠가 돼지 배 갈라 줄 테니깐 동전 종류별로 나눠서 얼만지 세어봐?" 


딸은 막내 동생에게 재하청을 줬다.

"00야. 누나가 하는 거 보고 똑같이 따라 해놔. 알았지?"

그렇게 딸과 막내는 열심히 동전을 분류했다. 1년간 모은 동전의 총액은 29,000원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을 하려고 했는데, 고민하기도 전에 딸이

"아빠, 이거 내가 했으니깐 나 먹고 싶은 거 사줘?"

"뭔데?"

"떡볶이"


설 연휴 때부터 노래 부르던 떡볶이를 사주기로 결정했다. 사준다 사준다 하면서 며칠 미뤘더니 이제 '떡볶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곤이 밀려온다. 그런데 어차피 오늘 사줘봤자 내일 또 떡볶이만 찾을 게 뻔하다.


그렇게 막내만 데리고 동네 우체국으로 갔다. 두 아이가 명절 때 받은 세뱃돈과 나와 아내가 부모님께 받는 세뱃돈까지 합해서 100만 원을 통장에 입금하고, 동전으로 바꾼 29,000원은 현금으로 받아 왔다. 우체국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하나로마트로 들어갔다.


막내에게는 "아들, 먹고 싶은 과자 있으면 하나 사고 있어. 아빠는 저쪽 가서 얼른 떡볶이만 집어올게"라고 말하고 딸이 그토록 노래 부르던 떡볶이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렇게 떡볶이를 사 가지고 집에 가져오자마자 딸은 "앗싸"라는 파이팅 넘치는 소리와 함께 바로 냄비에 물을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떡볶이와 라면은 혼자 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딸에게 사온 떡볶이를 넘기고 손을 씻고 작은 방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정말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싶을 때 목이 말라 주방으로 갔더니 떡볶이였을 거라 짐작되는 식탁에 떨어진 잔해물과 설거지 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새 딸은 떡볶이를 만들어 막내와 둘이 순식간에 먹어 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 먹어보라고 말도 안 하냐?"

"언젠 말하니깐 떡볶이 안 좋아한다며? 그래서 동생이랑 먹었지? 근데 이것도 양이 모자랐어"

"안 좋아하지. 안 좋아하는데..."

"됐어. 이미 다 먹었어. 근데 내일 또 사주면 안돼?"


그렇게 내가 예상했듯이 내일 또 떡볶이를 사달란 말과 함께, 오늘 잡은 돼지는 떡볶이가 되어 딸과 아들의 뱃속으로 삼켜져 소화까지 되고 있었다. 

'참 대단하다. 대체 떡볶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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