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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Feb 08. 2022

딸의 취미를 함께 해보았습니다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30,31일째

- 30일째 - <아내의 외출>


아주 오랜만에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했다. 휴직하면서 지켜본 바 일적인 만남 또는 동호회를 제외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창 시절 친했던 친구들이 지역적으로도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모두 아이를 키우고 본인 직장일들로 가장 바쁠 나이대이다 보니 만나는 게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그런 상황이지만 몇 년 만에 가장 가까운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기에 무조건 나가라고 집과 아이들 걱정은 일절 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며 등 떠밀어 내보냈다. 그렇게 아내가 나가자마자 우린 마트로 갔다.

그리고 아내는 좋아하지 않는 짜장라면과 각종 과자, 음료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점심은 짜장라면으로 해결했다. 밥도 식탁에서 먹지 않고 티브이 앞에 상을 펴놓고 만화를 보면서 먹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먹고 마시고 티브이 보면서 놀다가 지루해질 때쯤 큰아이가 막내를 데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편하게 작은방 침대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일고 편하게 누워있었다. 5시쯤 되자 

"애들아 저녁은 뭐 먹을까? 떡볶이 빼고"

"짬뽕!"

"점심때 면 먹었는데 저녁도 면 먹어?"

"그럼 볶음밥도 시키면 되지"라며 행복한 저녁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들어왔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저녁까지 먹고 오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눈도 많이 내리고 춥고 해서 일찍 끝냈어"

"어~~ 그래. 씻어. 저녁 준비할게"


우리의 일탈 같은 식사는 한 끼로 끝이 났다. 저녁도 편하게 시켜먹고 끝내려고 했는데 우리 아내는 너무 착실하다. 통금시간도 없으니까 더 놀고 와도 되는데.

'자기야 언제든 나가서 놀아도 되니깐 걱정하지 마. 내가 잘하고 있어'


- 31일째 - 일 <딸의 취미를 함께 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겨울 스포츠 종목에 대해 알려도 주고 한국 선수들 응원을 하기 위해 티브이를 켜놓고 올림픽을 보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벽난로 앞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바늘과 실을 가지고 인형을 만드느라 집중하고 있는 걸 보았다.


평소에 숙제해야 할 때에도 책상에 앉아 조물딱 조물딱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잔소리를 하곤 했었지만 정확히 뭘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너무 집중해서 재미있게 하고 있길래 오늘은 물어봤다.

"딸, 재밌어? 목안 아파?"

"응. 너무 재미있어!"

"실뭉치 바늘로 콕콕 찌르기만 하는 게 진짜 재미있어?"

"응. 한번 해볼래?"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 워낙 예술적인 감각은 타고나질 않았기에 그리거나 만들거나 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딸이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길래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싶어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딸이 내 앞에 다양한 색상의 실뭉치와 큰 바늘을 하나 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모양을 만들 건지 물어보기에 호랑 이해니 깐 호랑이 비슷한 걸 만들어보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사진을 하나 찾아서 "이거 만들어 볼게"라고 했다.


그렇게 딸에게 방법을 배우고 핸드폰에 띄어놓은 사진을 보며 실뭉치를 바늘로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름은 양모펠트라고 한다. 실뭉치를 바늘로 찌를수록 단단하게 뭉쳐지며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한 만들고자 하는 캐릭터의 머리 부분을 완성했을 때 이미 30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간이 그 정도로 흐른지도 몰랐다. 시간을 잡아먹는 마력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실력이 워낙 형편없는지라 사진상에 있는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 나왔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바늘에 찔린 손가락도 아팠다. 내가 하니 옆에서 막내도 한다고 실뭉치에 바늘을 요리조리 찌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재미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념무상의 상황을 유지하는 데는 굉장히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나조차도 재미있다고 느끼진 못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늘을 찌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딸이 만든 토끼인형, 내가 만든 호랑이 옷을 입은 시바견,  다른 뭉치는 막내가 만든 초밥(?)>

어찌 됐던 시작했던 일이라 몸통까지 만들어 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 완성(?)된 인형을 딸과 아내가 귀엽게 잘했네라고 말해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또 인형을 만들 생각은 없지만 딸은 나와 마주 보고 앉아서 본인이 아는 걸 나에게 가르쳐주며 함께 만드는 게 너무도 재미있었나 보다. 그걸 어떻게 느꼈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만드는 동안 딸이 계속 앞에서 "아빠, 너무 잘한다. 캐릭터 너무 귀여워. 엄마 아빠 거 너무 예쁘지 않아. 다 만들면 내가 키링 달아줄게."같은 칭찬을 계속해주었다. 본인에게는 내가 함께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나 보다.


그런 걸 보면 앞으로도 내 눈에 보기에는 시간낭비 같아 보일 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잔소리만 하지 말고 그걸 왜 좋아하는지, 왜 그렇게 열정을 쏟는지 한 번이라고 같이 해보며 느껴봐야겠다.


'딸, 네가 재미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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