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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29. 2022

담배 피우는 엄마

엄마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고집을 피운다.

한 살 아래 사촌동생은 사춘기를 제법 앓았다. 

동생의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자매를 한 명씩 나누어 데려갔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싸우면 형제자매는 서로를 보호한다.

살뜰히 동생을 챙기던 녀석은 갑작스러운 단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본인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게 되니 교실보단 거리가 편했나 보다.


동생은 명절 때면 나의 집에 당연하게 놀러 왔지만

그때는 조금 긴 시간 함께 있었다.

동생의 엄마는 이혼 후 자리를 잡아야 했다.


어느 저녁 피자를 한 판 시켜놓고 영화를 보고 있는데 

어디서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났다. 

동생이 소파 뒤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입만 벌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동생을 보더니 

"어. 너 담배 피우는구나? 뭐 피냐? 한 대 더 줄까?"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동생은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사춘기 한 때 잠깐 피우고 자연스레 끊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때를 회상하며 그건 다 본인 덕이라 했다.

엄마가 그날 동생과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마디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후~ 너 담배 계속 피우면 이모처럼 산다?"


지금 동생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주 성실하고 바르게 살고 있다.

그녀에게 그 말은 무엇보다 강력한 금연 동기였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담배냄새가 싫었다. 

전자담배도 없던 시절이라 그 특유의 쩐내가 너무 싫었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포근하게 안겨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자기 엄마 냄새가 좋다던데 나는 이해를 못 했다. 

그녀가 날 안으려고 해도 손사래를 쳤고, 내가 먼저 안기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이십 대 때 직장에서 유독 고되었던 날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나도 한 번 피워보고 싶었다.

담배를 사며 편의점에서 민증검사를 당한 건 내심 기뻤다. 


불을 어떻게 붙이는지 몰라서 한 손으로 담배를 쥐고 끝부분에 라이터를 댔다.

향처럼 잠깐 대어도 불이 금방 붙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붙는다.

어떻게 대충 연기가 나길래 한 모금 빨았다가 세면대에 토악질을 했다.

침을 뱉었는데 무슨 가루가 섞여 나왔다.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너 혹시 거꾸로 피운 거 아니냐고 묻는다. 

아직도 그건 잘 모르겠다.




지금도 나의 엄마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피우지 않는다.

그녀에게 담배가 삶의 낙이라고 하니 내가 끊어라 말아라 할 수가 없다.

엄마의 삶은 나의 삶과 다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손주를 보러 올 때 엄마는 새로 세탁한 옷을 가져와서

집에 오자마자 목욕을 하고 갈아입는다. 

어린 나를 대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래저래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현재 나를 가장 돕고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엄마도 나이가 먹을수록 자식이 하는 잔소리가 그렇게 서운하다고 한다.


"아니 왜 애 그릇을 그렇게 대충 헹궈! 싱크대에 왜 그렇게 양념을 흘리는 거야 도대체."

"이년이 도와줘도 지랄이야. 니 새끼 밥 먹이느라 애쓰는 건 안 보이고 아주 식모 대하듯이 아주 진짜 정말."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어떻게 했는데! 그 정도도 못 참으면 그냥 가. 내가 혼자 할 테니깐."

"어유. 저 독한 년. 때려죽일 년. 배은망덕한 년."



엄마는 담배를 피우고, 나는 고집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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