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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싫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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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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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지다사라지다
Dec 25. 2022
이혼해도 애는 보고 살자
부부가 헤어졌다고 해서 자식 하고도 헤어진 건 아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 곰은 너무 귀여워
으쓱으쓱 자란다.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엄마 상어 뚜루루 뚜루
아기 상어 뚜루루 뚜루
우리는 행복한 상어가족
신난다 신난다 춤을 춰 오예
아이들 만화에 등장하는 가족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는 꼭 그러하진 않다.
내가 어릴 때는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금은 '한 부모 가정'이라고 하는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어떠한 사유로 친하지 못해서 헤어진 거 까지는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헤어졌다고 해서 엄마나 아빠가 나와 단절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모가 서로 헤어진 것뿐이지 나와 헤어진 것은 아닌데
아빠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을까 궁금했다.
처음엔 궁금했다가 나중에는 원망으로 바뀌었다.
아빠가 나에게 나쁜 모습을 보인적은 없지만
좋은 모습조차 나의 추억에 없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내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 엄마와 아빠와 나
셋이 나들이를 갔다.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불편함이 나까지 숨 막히게 했지만
왠지 그 순간이 좋기도 했다.
오늘만큼은 누가보기에도 나에게 아빠가 있는 것 같아서
그날은 엄마와 아빠가 내 손을 한쪽씩 잡고
가운데서 내 다리를 들고 유영하고 싶었다.
티브이를 보면 아이들이 자주 그러고 나왔다.
산책로에서 부모님의 손 그네를 열심히 탔다.
그날이 우리 셋의 마지막 나들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에게 자주 오지 않았다.
그 서운함을 엄마에게 자주 토로했지만
불평불만으로는 대한민국 둘째가라면 서운한 그녀가
아빠 얘기가 나올 때만큼은 고개를 돌리고 말을 아꼈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외할머니는 나의 아빠를 좋아했다.
딸자식이 이혼했지만 계속 양서방이라고 불렀다.
가끔 아빠는 엄마가 아니라 전 장모님을 보러 왔다.
할머니는 언제나 후한 밥상을 차려 반겨주셨다.
할머니는 늘 아빠에게 "자네가 여자를 잘 못 만나 고생이 많아."라고 했다.
요새 만나는 참한 색시는 없냐고 아빠에게 묻자,
한 명 있었는데 해외 유학을 보내주면 결혼하겠다 약조한 여자가
유학비만 받고 해외에서 잠적했다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것이 정녕 사위와 장모의 대화인지,
내가 왜 이런 대화를 듣고 있어야 되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본인이 좋은 부모라는 것을 강조했다.
공교롭게 아빠의 빈자리가 생겼지만, 본인이 그것을 채워나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늘 강조했다.
강조하지 않아도 사실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은 늘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엄마의 호소에 대응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가 노력하는 거 알아.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가 그 노력을 하면서
고단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력을 덜 하고 편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한테 짜증을 좀 덜 냈으면 좋겠어.
이혼한걸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내가 사는데 별 지장 없어.
나는 단지 어린 시절에 아빠가 날 보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확인받고 싶었어."
부모라고 해서, 친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모성애와 부성애가 기본값이 아니라는 것과
나의 부모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식이 철이 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하지만
어린
아이는 모른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때만큼이라도 좀 자주 만나서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
설령 자녀가 만나길 원하지 않아도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는 있지 않나.
같이 살진 못하지만 아빠가 너를 항상 사랑하고 있다고,
몸이 멀리 있어도 항상 마음은 너의 곁에 있다고
뭐 이런 말 몇 마디쯤은 해줬으면 내가 덜 서운했을 것 같다.
물론 아빠에게도 사정이 있었고, 생각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아빠를 다 이해할 순 없고 좋아할 수도 없지만
나도 그가 아빠가 되었던 나이가 되어보니
"아빠. 내가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그 이후로 나에게 가끔 본인이 요리한 사진을 보낸다.
음식을 사주는 것도 아니고 왜 사진만 보내는지, 지금 사람 약 올리는 건지 또 욱했다가
아,,, 이게 아빠의 생존신고 같은 거구나 하고 넘긴다.
젊음은 싱그럽고, 청춘은 아름답고, 성숙은 거룩하다.
하지만 속 마음은
젊음은 불안하고, 청춘은 위태롭고, 성숙은 아프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데 젠장 안 아프고 성장 안 하고 싶다.
아기상어의 후렴구처럼
살았다 살았다 오늘도 살았다.
오늘을 기어이 살아낸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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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살아지다 언젠가 기어이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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