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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Dec 23. 2022

하마터면 보이스피싱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오해가 생긴다

엄마는 나에게 따듯했던 적이 별로 없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억울해하겠지만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은 그렇다.


엄마가 자녀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며

"엄마가 많이 사랑해. 아이고 예뻐라 내 새끼."

이런 일은 내 인생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도 엄마로서 애정표현은 했다.

그것은 주로 소비활동에 관련된 것이었다.

키티 학용품, 바비인형, 알록달록 머리핀,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

주말이면 날 데리고 명동에 나가

그런 것들을 잔뜩 사고 내 방에 진열해놓은 다음

엄마는 다시 떠났다.


엄마가 어디에 가는지, 언제 오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십 대가 되니 엄마가 집에 없는 자유가 제법 편했고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래왔듯

엄마가 곧 다시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엄마는 실직을 했고 곧 무기력해졌다.

2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을 했으니 지칠 법도 하지만

어딜 가도 젊고 예쁘다고 칭찬을 받던 엄마가

신발장 속 먼지 쌓인 빗자루처럼 늙어가고 있으니

자식으로서 내심 불안했다.


나의 첫 번째 직장 팀장님이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부모님 선물을 사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초밥을 샀다.


"와 이거 네가 번돈으로 산 거야? 근데 이거 1인분 맞니? 가격에 비해 양이 좀 적네."

이게 엄마의 칭찬법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엄마에게 뭘 해주고 싶지가 않다.

그녀의 칭찬은 나를 아프게 하기 때문에.




어느 날은 진상 고객 때문에 내가 곤욕을 치렀다.

지금 나의 연배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20대 초년생의 마음은 제법 여렸다.

집에 와서까지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엄마도 날 위해 돈을 벌면서 이런 수모는 수도 없이 겪었겠지?

그걸 다 참고 이십 년을 날 키운 거야?'


학생일 때는 엄마가 귀찮고 밉기만 했는데

돈을 벌어보니 세상이 만만치가 않다.

별의별 인간 군상들이 다 있다.

살기 위해, 벌기 위해 그걸 견뎌 내는 것이 부모들이다.


내 한 몸 생활비 벌기도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데

자식을 먹여야 하니 얼마나 더 허리를 숙여야 했을까.

한 여름의 햇볕은 얼마나 더 따갑고

한 겨울의 바람은 얼마나 더욱 매서웠을까.


울고 싶어도 웃어야 하고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힘겹게 모여

내 입에 밥이 떠 넣어졌다.



맥주도 한 캔 마셨겠다 에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싶어졌다.

엄마 휴대폰으로 '사랑해' 세 글자의 문자를 보냈다.



5분 뒤에 엄마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왜."

"야. 여기 니 번호로 이상한 문자가 왔는데, 이거 스팸인가 피싱인가 그런 거 맞지?

이거 누르면 돈 빠져나가고 그런 거지 이거?

네가 나한테 이런 문자를 보낼 리가 없잖아."


나는 그녀에게 보이스피싱 조직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차마 그 문자는 진짜 내가 보낸 것이라고 해명하지 못했다.

설명을 시작하게 되면 또 육하원칙에 의거한 질문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까의 눈물과 미안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귀찮음만 남았다.


그 이후에도 엄마에게 피싱 문자가 또 온 적이 있다.

"엄마 내가 핸드폰이 고장 나서 급하게 이 번호로 문자 보내게 됐어.

지금 급해서 그런데 20만 원만 부쳐줘."

이 수법 역시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다.

내 딸이 이렇게 자상하게 문자를 보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보이스피싱도 부모 자식 간 애정이 끈끈해야 성공하는 모양이다.


'엄마도 엄마지만, 참 나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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