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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지다사라지다 Jan 16. 2023

나는 당신이 알코올중독인지 몰랐다

알코올중독 그리고 폭력

우린 둘 다 직장에 메인 몸이라 결혼 전에는

평일에는 일하고 퇴근해서 쉬기 바쁘고

주말에만 만나서 저녁 식사를 했다.


소고기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에

그는 소고기와 함께 늘 소주를 마셨다.

평일에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나랑 만날 때만 소주를 마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외식에 기분 좋게 소주 한 병쯤은 마셨다.




결혼하고 나니 당신은 매일 저녁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집에 왔다.

그럴 거면 그냥 짝으로 사다 놓고 먹으래도

꼭 집 앞 편의점에서 한 병 만 사 왔다.

그것은 본인이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진입했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당신에게 저녁식사와 곁들인 소주 한 병은

그냥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었을지라도

내 친정 부모님이나 친지들, 친구들을 통틀어

아무도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어서

몹시 당황했었다.


담배도 피우는 당신은 술까지 그렇게 매일 먹었다.

시어머니는 "쟤는 아주 간을 절여요 절여."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술이 어느 선 이상 취하면 눈빛이 바뀐다.

나는 그것이 공포영화 같다.

한 사람 안에 다른 인격이 출몰할 때 보통 눈이 바뀌더라.


"오늘은 좀 비싼 바에 갔다며. 그거 오빠가 계산했어?"


라는 물음에 당신은 갑자기 집 앞에서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남자는 원래 여자보다 힘이 세지만 술에 취하면 더 세진다는 걸 몰랐다.

이전에는 남자가 나에게 머리채를 잡거나 폭행을 행사한 적이 없어서.

당신은 내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집에 혼자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놀라 울고 있었지만

다시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각 정처 없이 인도를 걸었다.

부모님에게 말하면 분명 걱정하실 거고

 시간에 전화할 친구도 마땅치 않았다.


계속 걷다 걷다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에 들어갔다.

혹시나 깨서 날 기다릴까 하는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았다.

당신은 거실에서 아주 편안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혼자 정형외과에 가서 목 깁스를 하고 왔다.




보통 여기까지의 사건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헤어지라고 할 것이다.

나 역시 그게 맞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를 이해하려 했던 게 실수였다.

술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중독이다. 중독.

끊기 매우 힘든 중독.


아이가 생기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혹시나 자신의 핏줄이 태어나면 조금 바뀌지 않을까.

담배도 좀 줄이지 않을까.

이런 헛된 기대는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당신에게는 애는 애고, 술은 술이었다.


임신을 한 모든 여자들이 그런 헛된 기대를 가져본다.

그래도 남자가 아이를 조우하면 예전보단 나아질 거야.

실제로 나아지는 남자들이 많다.

그게 내 남편은 아닐 뿐이다.


임신 8개월. 어느 여름날.

배가 눈에 띄게 나온 임산부가 술에 취한 남편을 데리러 가는 길.

임산부를 이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고 여기 오게 하다니.

난 화가 나서 남편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남편은 차에서 나와 내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번개가 보일 정도로 아팠지만 나는 두 손으로 배만 가렸다.

나에게 얼굴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놀랠까 봐 울면서도 심호흡을 했다.

배가 굳어갔지만 나는 계속 숨을 몰아 쉬었다.

아기는 지켜야 했다.

임산부가 해장국 집 앞에서 두드려 맞는 창피함은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술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가 술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임산부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바란 것도 아니고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 오란 부탁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입맛이 없었다. 아기에게 미안해서.


그래도 아기가 태어나고 자신을 똑 닮은 생명체를 조우하면

지금보단 나아지겠지라고 믿었다.


그 거지 같은 믿음 때문에

나는 갈수록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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