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먹사님 Sep 06. 2020

운동화 얼룩이  거슬렸다

실패했다면 다시 시작해

내년이면 벌써 서른.

하지만 여전히 난 아침에 엄마의 잔소리가 없으면

깨기 힘들다.


털레털레 걸어 버스를 탄다. 버스 안 사람들 얼굴을 잠시 훑어본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이미 그럴듯한 직급을 달고 있고,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하고 있겠지. 나는 방황의 대가로 신입이란 타이틀을 여전히 떼지 못한 체 있다.


늘어난 건 있다.

언제나 돌진을 외치던 내가 이제 이리저리 덜 손해보고 덜 다치기 위해 낮은 자세로 경계를 취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살핀다. 반듯하게 서 있는 그들 앞에서 나는 조금씩 작아지다가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일까 다시 등을 휙-핀다.


'괜찮아, 나는 대기만성이니까'


분명 정신없이 살았다. 뒤처지지 않으려 달렸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버스가 흔들리며 잠시 몸이 중심을 잃지만 손잡이를 더 꼭 쥔다.

이번 역이 어디쯤인지 전광판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올린다. 그러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 별 의미가 없는 시선에 괜스레 기가 눌린다. 결국 이내 움츠러들어 고개를 떨구고 늘어진 입꼬리를 마스크 뒤로 숨긴 체 발등을 쳐다본다. 까맣다. 이런 나를 사랑하기 위해 했던 노력은 발등에 때만 남겼다.


-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다.


그러다 운동화 발등이 떠올라 화장실에 들고 가 결국 손빨래를 한다. 솔을 들고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때가 영 거슬린다. 새것처럼은 안 보여도 깨끗하겐 보여야 할 텐데, 자국 하나가 유독 안 지워진다. 물에 더 불려놨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제 새 신을 살 때가 된 걸까? 사고 몇 달 안 신었는데.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진 신발을 신고 다시 난 또 길 위에 서겠지.


서른. 서른에는 다들 근사한 구두를 신는 줄 알았다.

정장 쫙 빼 입고 새 구두를 신고 그렇게 당당하게 길 위에 설 줄 알았다. 그 구두를 신고 돌아오는 집이 '내 집'이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

모두 아니었다.


침대에 눈을 붙인 체 누워있다가 문득. 결국 일어나 베란다로 간다. 창문턱에 올려둔 세탁한 신발을 결국 다시 가져온다. 그리고 '운동화 깨끗이 빠는 법'을 검색한다. 저 얼룩이 꼭 지워져야만 할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지나가다 툭 던진다.


"둬. 엄마가 할게."


내가 해야 한다고, 이건 내가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한참을 뜨거운 물에 불려 결국 때를 뺐다. 온몸에 땀이 축축이 젖어 샤워를 한다. 생각해보면 난 늘 그랬다. 어떤 중요한 일을 해결하거나 마치고 나면 사우나에 가서 때를 밀었다.


샤워를 마치고 베란다로 나가 창턱에 운동화를 올려둔다.  잘 말라줘,  다시 새 것처럼.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