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만쥬 냄새에 끌려 한 번 즘 발길을 돌려본 적이 있다면
퇴근길, 일분이라도 더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바삐 걸어 계단을 올랐다. 그때, 고소한 버터향기가 코끝에 스멀스멀 감겼다. 그 향기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든 생각.
‘이 근처에 델리만쥬를 파는 곳이 있었나?’
아니나 다를까, 델리만쥬 간판을 발견했고 이내 내 손에 들린 것은 델리만쥬 봉지. 삼천원에 열두개,미쳐버린 물가에도 참 착한 가격이다.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붕어빵 가격은 마리에 오백 원하는 곳도 많은데 착하다 착해.
물론 지출을 아끼자며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는 내게 삼천 원이나 써서 간식을 먹는다는 것은 분명 사치다. 그럼에도 겨울에 지하철에서 맡는 델리만쥬 냄새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하나를 통째로 입 안에 넣어 커스터드 크림이 터지는 걸 느끼며 먹는 것도 좋고, 한 입씩 베어 무는 방식도 좋다. 이러나저러나 맛있는 건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아직 온기가 식지 않아 따끈따끈할 때 먹는 것이겠다. 그 때문인지 붕어빵과 함께 겨울철 간식으로 손꼽히지만, 붕어빵에 비해서는 인기가 덜한 편이다.
그래, 이게 커스터드 크림이지!
델리만쥬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커스터드 크림에 관해서는 특별한 추억이 하나 있다. 나는 어릴 적 오과자 ’ 카스타드‘를 통해 커스터드 크림에 대해 판타지 같은 것이 있었다.
어린 내게 표지에 노란 크림은 무척이나 맛있어 보여 군침을 당기게 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포장을 열어 한입 베어 물어보면 느끼함으로 인해 실망하곤 했더랬다. 그런 내게 ‘그래, 이게 커스터드 크림이지!‘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 것이 바로 델리만쥬다.
갓 구운 빵과 그 안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에 조합은 내 판타지를 채우기에 충분했고, 그 맛을 알아버린 후론 겨울이 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델리만쥬 냄새만 맡으면 ‘사야 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늘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퍽퍽하고, 또 어떨 때는 크림이 너무 적어 실망한 적도 있더랬다. 그래서 한동안 델리만쥬 냄새를 맡으면 ‘냄새에 속지 말자, 분명 저놈도 빛 좋은 개살구일 거야’라며 불신으로 델리만쥬를 기피한 적도 있었다.
냄새에 영업당해서 실망한 적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불신의 과정을 거쳐 오랜만에 산 델리만쥬 한 봉지는,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맛있는 델리만쥬를 먹어 기뻤다. 가족들과 나눠 먹기에도 넉넉한 용량, 12개라 더 좋았고.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풍경들 마저 잿빛과 삭막함이 감도는 도시에 이런 소소한 재미가 조금이나마 언 몸과 마음을 녹여줘서 참 고맙다.
델리만쥬, 앞으로도 오래오래 내 겨울을 함께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