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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님 Mar 24. 2023

카푸치노 거품 같은 어른이 됐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막, 제대로 만들었을까?


지하철 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내 시야에 쏟아져 들어온다. 내일의 주인공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 젊고 풋풋한 얼굴들. 뽀얗고 탄탄한 피부, 앳된 얼굴. 아직 세상에 찌들지 않은 맑은 눈빛. 아, 부럽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니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궁상맞은 인간이 되었는지. 참 처량하다.


한 때는 물광 피부니, 싱그럽다니 온갖 찬사를 듣던 나다. 하지만, 30대는 피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빛을 발하던 피부는 이제 스킨로션을 챙겨 바르지 않으면, 건조하다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내게 ‘너 나이대로 돌아가고 싶어’라며 말했던 형 누나들의 말이 이제야 공감된다. 그리고 인정한다. 젊다는 것은, 20대는 권력이다.


우습게도 나의 20대는 그리 찬란하지 못했었다. 커피 잔을 시간과 젊음이란 세제로 문대며 돈을 벌었던 시간들, 사람에 데고 상처받았던 날들. 뭘 해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뛰어들었다가 좌절하고 포기했던 모습들. 그따위 것들로 가득한데도, 나는 나의 20대를 그리워한다. ‘그때 왜 나는 조금 더 용감하지 못했을까? 왜 조금 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할 순 없었던 걸까?’ 하고 스스로를 꾸짖는다.


누군가한테는 지금 내 나이도 부럽고 찬란한 나이란 것즘은 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살고,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평범한 소인배기에 멀리 보지 못하고 과거에 묶여 순하고 멍청하던 그 아이만을 탓한다. 바로 나 자신을 말이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거품. 거품을 한 겹 두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카푸치노 거품처럼 도톰하게 내 주변에 둘러놨다.


사람의 알맹이는 마치 에스프레소와 같아서 물이나 우유를 희석하지 않으면 너무 쓰고 독하다며 기피하는 이들도 있다. 기피되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약간의 우유와 우유거품을 올리는 것이었다.


감정낭비, 시간 낭비를 피하기 위해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만남은 바쁘단 핑계를 대고 피한다. 불편한 사람들은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무시하거나, 데면데면 대한다. 나도 이젠 어른이다, 세상을 알만큼 안다 외치듯 거품 위에 쌉쌀한 맛의 시나몬 가루도 좀 뿌려놓고 말이지. 그래봐야 애송이지만.


간혹 그렇게 나 같은 인간 카푸치노들을 만날 땐 웃기게도 동질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든다. 어쩌면 동족 혐오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푸치노라고 다 같은 카푸치노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이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깨달은 사실이다. 어떤 곳은 카푸치노 위에 올라가는 우유 거품을 정말 쫀쫀하게 밀도 높게 만들어서 옅게 올린다. 이렇게 만든 거품은 쉽게 꺼지지도 않을 뿐 더러, 커피와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부드럽게 입 안에 스며든다.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적당히 감싸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정말 공기반 우유반으로 대충 모양새만 내어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공기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거품을 올린 카푸치노는 맛도 없다. 에스프레소와도 따로 논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 되게 가식적이네’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


내 거품은 어떤 거품일까. 나란 에스프레소와 잘 어우러져 있을까? 자기 객관화는 항상 어렵다. 답을 모르니 일단은 이렇게 살아가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다시 거품을 만들어 더 쫀쫀하게, 에스프레소와 어우러지게 만드는 수밖에 더 있나. 하지만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에스프레소. 거품을 아무리 맛있게 만든다 해도, 에스프레소가 맛이 없다면 결국 그 카푸치노는 별로인 카푸치노가 된다.


그래, 일단 에스프레소부터 제대로 내려야지. 그러기 위해서 뭐라도 하자. 언젠가 거품들을 헤치고 내 에스프레소를 맛볼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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