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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써니 Jul 07. 2023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아까시나무]

어렸을 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하늘이었다.  초등 고학년에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며 혼자만의 대화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재밌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마음껏 상상하며 빈둥거리는 것도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요즘 들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난다. 아주 가까운 과거 같은 느낌이다. 깡마른 초등저학년 아이는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고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 장면들 속에는 하늘을 가려주는 나무들이 더 크게 보여지곤한다. 


사진: Unsplash의Suzi Kim




깡마른 초등 저학년 아이는 이제 푸근한 50대가 되었다.  그 몇 십 년의 시간에 수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박완서 작가님의 글처럼 그 시간을 떠올리는 데는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여전히 마루에 누워 하늘이나 나무를 보며 멍 때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파트에 사는 나에게는 소원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사는 동네에 나무가 많다는 거다.  이곳으로 이사올 때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에 마음이 설레어서 선택한 것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나무나 하늘을 좋아하나 보다. 





우종영 작가님의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우종영 작가님은 서른 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아까시나무를 빌어 전해주신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까시나무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자세히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맞는 말 같다. 



- 아까시나무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우리나라의 숲들을 다시 프로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아까시나무는 연탄이 보급되지 전까지 서민들의 가장 요긴한 땔감이었다. 만약 아까시나무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울창한 숲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소나무를 비롯한 한국의 토종나무를 없애려고 아까시나무를 일부러 심었다는 낭설 때문에 아까시나무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이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일본인이 의도적으로 심은 나무가 아닐뿐더러 토종나무를 죽게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아까시 나무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민둥산을 푸르게 덮어주고 달콤한 꿀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그것도 모자라 제 몸뚱이를 한 겨울 땔감으로 내주었는데도 이국에서 잘 못 들어온 잡목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아까시나무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까시나무 자체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머물렀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1남 4녀 중 막내다. 아들을 하나 더 낳아보려고 노력하다가 낳은 막내딸이다. 막내여서 존재감이 있을 수도 있고, 바라던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 딱히 집안에서의 존재감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남편도 1남 4녀 중 유일한 1남이고 막내 아가씨가 늘 존재감이 없었다며 놀리는 것을 보며 나는 어땠는지를 떠올려봤을 뿐이다.  


바쁜 부모님, 오빠와 언니들에게서 정서적 지지나 보살핌은 없었던 것 같다. 깡마른 초등 저학년 여자 아이가 하늘과 나무를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헛헛함을 달랜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와 언니들도 자신의 헛헛함과 마주하느라 나를 돌볼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정서적 지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잘 견디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을 뿐.


막내여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랐겠다는 주위의 이야기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명절에 회사에서 나온 상품권은 내 차지가 아니었다. 효심이 넘쳤었다기 보다는 내가 갖는 것보다 그것을 더 필요로 하는 언니들에게 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챙기기 보다는 가족 전체의 분위기가 편하면 나는 그걸로도 충분했었다. 


엄마가 생전에 나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막내가 장녀역할 하느라 고생한다고. 엄마의 그 말씀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는 내 마음 가는 대로 했는데 엄마 눈에는 그렇게 보였었나 싶어 울컥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엄마뿐이었을까..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금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나는 그거면 된 거였다. 


아까시나무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아까시나무가 자기의 자리에서 잘 자라고 존재했었던 것처럼 나 또한 지금의 나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날 좋은 날 거실 창가에 창문을 열어두고 푹신한 이불을 깔고 누워~ 하늘과 나무를 벗 삼아 시 한 편 읊조리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그 예전의 깡마른 어린아이의 헛헛함을 보듬어줄 만큼 나는 아주 푸근해졌으니 말이다.  마음이 일렁인다. 


사진: Unsplash의Minh P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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