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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wer Series Jun 27. 2023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브런치에 글을 작성할 결심, 그리고 두 주인공의 사랑할 결심

 서문을 좀 길게 쓰자면, 고3때와 재수할 때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영화가 친절한 금자 씨랑 올드보이였다. 나무위키를 통해 영화의 줄거리를 매일 보면서 그 영화들을 ott를 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영화관에서 그 영화들을 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 씨는 긴 세월에 걸쳐서 주인공이 복수를 한다는 점이 매력 있게 다가왔다. 올드보이는 복수극은 아니지만 시놉시스가 완벽하다고 느꼈다. 수능이 끝나고 원하던 대로 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줄거리를 먼저 보고 영화를 보니까 영화에서 느끼는 감상이 덜하긴 했다.


 모종의 이유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대부분 찾아서 보게 되었고 그중 인생영화가 하나 생겼다. 숙희와 히데코가 사랑을 통해 자유를 찾게 되는 아가씨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그 사람에게 꼭 물어보는 것 중 하나는 그 사람의 인생영화와 드라마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들이 영화를 고르는 데에 반영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내 주변에서 나를 존중해 주는 가까운 사람들의 취향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인상 깊게 본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서 본 후에 내가 리뷰글을 쓰는 식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배려를 돌려줄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다.


 ‘헤어질 결심’은 주변 사람들 중에 추천해 준 사람은 없었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인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헤어질 결심’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당장 여자 주인공 송서래만 보아도 관객 입장에서 믿음이 가는 화자는 아니다. 대중적인 영화는 아무래도 친절한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현대사회에서 이해하기 쉬운 맥락과 상황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거나 주류를 이루는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덜 대중적이어도 주제가 무겁거나 토론이 가능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영화야 말로 재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 요소라고도 본다. ‘헤어질 결심’이 그러하다.


 다른 영화 리뷰 영상이나 글을 보고 쓰는 리뷰글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해석이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를 수 있다. 학창 시절에 문학을 잘하진 않았으나, 틀린 해석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틀린 해석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상황과 맥락을 모두 무시한 채로 키워드만 보고 영화를 납작하게 보는 것을 말하는데, 그런 해석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한다. 내가 본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결심이 필요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송서래와 장해준은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관계이다. 송서래는 남편을 죽인 사람으로 정황상 의심받고 있는 피의자이고, 장해준은 이 사건을 담당하고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이다. 게다가 두 사람 다 기혼자이므로 어떻게 보면 불륜을 미화하고 있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면서도 필연적인 부분일 수밖에 없던 건 앞서 언급했듯이 은유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은유들이 쏟아지듯이 나온다. 이 은유와 메타포들이 이해하기 힘들게 다가올 수 있겠다.


 나는 이 작품에서 결혼과 수갑을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기로 했다. ‘헤어질 결심’의 포스터이자 가장 유명한 장면인, 송서래와 장해준이 같이 수갑을 차고 경찰차를 탄 장면에서 느낀 바가 있다. 영화 내에서 사건이 총 세 번 등장한다. 한 번은 질곡동 사건, 두 번은 송서래가 살인범이라고 의심받는 (정확히는 둘 다 사건이 미결인 채로 종결된다.) 사건이다. 이 세 번 모두 장해준의 관할이었다. 질곡동 사건에서 용의자 홍산오는 송서래와 유사한 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홍산오는 장해준이 연구를 하면서도 잡아내지 못한 사건의 용의자이다. 송서래는 장해준의 사건 자료들을 보고 범인이 홍산오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범죄자가 범죄자를 잘 알아본다는 농담조의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장면도 그런 부분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송서래는 홍산오가 오가인을 많이 사랑했다는 점까지 알아냈으므로 단순 범죄의 영역보다는 좀 더 넓게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안정안이 자신의 남편 장해준에게 직장 동료 이주임이 해준 말을 꺼내면서 자신의 걱정을 말한다. 안정안과 장해준은 주말부부인데, 이를 걱정하는 투로 이주임이 “주말부부 10쌍 중에 여섯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안정안은 “섹스리스 부부 중에 55%는 이혼한다는데 괜찮냐”하고 받아쳤다고 한다. 마지막에 이포로 내려와서 이혼을 하기 전까지 안정안은 장해준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갱년기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모순적이게도 장해준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보다 질곡동 사건에 집중을 하고, 안정안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장해준의 불면증 증상이 심해진다. 안정안과 송서래는 대립적인 관계이기도 하나, 장해준의 몸의 상태도 둘 중 누구와 같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송서래는 장해준에게 미 해군 장교들이 개발한 방법이라면서 자면서 ‘코’로 자신과 숨을 맞추면서 수면을 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안정안의 직장인 원전이 있는 이포로 장해준이 내려오게 되면서 ‘코’로 숨을 쉬지 못해 불면증 증세가 악화된다. 병원에 찾아가서 코로 숨 쉬는 기계를 받아오기까지 한다. 장해준과 송서래는 ‘수갑’으로 연결된 관계이지만 장해준에게 ’수갑‘처럼 다가오는 관계는 안정안과의 결혼 생활이다. 여기부터는 추측이지만, 장해준이 안정안과의 생활을 기피하기 위해 잠복근무에 매진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잠이 안 와서 잠복을 한다고 언급한다.


 기도수는 송서래가 죽인 남편이다. 기도수의 특징은 산 등산을 즐겨해서 유튜브까지 있으며, 소유욕이라는 이니셜을 자신의 소지품에 모두 새긴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인 송서래에게 자신의 이니셜을 새기기도 한다. 기도수는 산을 사랑하였으나, 송서래는 산을 무서워하였다. 그리고 송서래는 자신이 인자한 사람이 아니라서 바다를 사랑한다고 하였다. 바다는 송서래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장소이다. 그녀는 바다에서 실종되어 미제사건으로 남는다. 안개라는 노래를 자신이 돌보는 독거노인들에게 들려준다. 송서래가 실종된 이포는 영화 상에서 안개로 유명한 지역이다. 여기서 모순적인건 바다는 숨을 쉴 수 없는 영역이고, 현실적(?)으로 송서래가 죽음으로 추정되는 이유도 숨을 못 쉬어서이다. 장해준은 송서래를 찾기 위해 바다로 가고, 송서래가 자기 자신을 묻힌 바로 옆에서 송서래를 찾는다. 바다는 송서래가 미제사건으로 남는 장소이면서 장해준의 마음이 닿는 곳이다. (여기서 실종은 현실적으로 자살과 마찬가지이나,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이 없다.) 이포 해안가에서 장해준이 송서래의 폰을 찾고, 송서래가 어떻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는지 알게 된다.


 송서래는 장해준이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했다는 말을 녹음해서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한다. 녹음본을 들어보면 사랑이 아니라 붕괴라는 표현을 대신 쓰고 있다. 사랑이란 단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간 대사는 없다.


 그럼 장해준의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라는 말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송서래가 용의자로 지목된 두 사건 중 첫 번째 사건에서 언급한 대사이다. 송서래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장해준이 좌절하는 상황이었다. 장해준은 경찰이고 잠이 안 와서 잠복수사를 하거나 집에 사건 자료들로 도배를 해놓을 정도로 경찰이라는 직업에 밀접해있다. 이 직업은 장해준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송서래를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내려놓는다는 얘기로 해석이 되었다. 좌절을 하면서 장해준은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시키고, 장해준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난다. 하지만 송서래의 사랑은 이 순간에 시작이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심이 필요한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불륜을 미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도 결혼이라는 장치를 영화 안에 삽입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여기서 결혼은 주인공 두 명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불륜은 그 둘에게 탈출구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여러분 불륜을 하세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둘의 사랑을 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영화적 요소이다. 그들에겐 어떠한 결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송서래의 사랑에는 결심이 필요했다는 것은 마지막에 송서래가 파도 속에 잠겨 죽는 장면과 장해준의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라는 대사에서 느껴진다. 우리의 일상에서 결심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결과적으로 다가올 순간이 실패 거나 슬픔일 확률이 매우 크다는 두려움에서 속에서 결심을 한다. 결심을 한다는 건 두려움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이 상황에 진심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송서래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해석이 되었다. 여기서 송서래는 장해준의 미제사건으로 남으면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슬픔과 함께.



#헤어질 결심

#박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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