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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wer Series Jul 09. 2023

<기생충>, 봉준호 감독

계획, 그리고 믿음의 벨트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가 꼭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관객에게 잘 전해지면 성공적인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이 영화 사운드 트랙을 찾아보면 정재일의 '믿음의 벨트'라는 곡이 있다. 가끔 찾아 듣는데 좋다. 그리고 연교의 대사 중에 '믿음의 벨트'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계획이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믿음도 중요한 테마가 된다. 민혁이는 기우를 믿어서 자신이 교환학생 가는 동안 자신이 맡고 있던 과외 학생을 기우에게 맡긴다. 믿음인지 아니면 자신보다 만만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맡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교는 기우의 말을 믿어서 기정이를 미술 치료 선생으로 고용한다. 사실 기정이를 믿어서 기정이를 미술치료 선생으로 고용한 것도 맞다. 기정이가 다송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스키조프레니아 존'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미술치료에서 그런 영역 같은 건 없다고 한다. 참고로 '스키조프레니아'라는 건 조현병의 영어식 표현이라고 한다. 기정이가 혹시 다송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데, 이때 연교는 놀라면서 기정이를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교는 기정이의 말을 믿어서 기존의 윤 기사를 자르고 기정의 아버지 기택을 고용한다. 이 믿음들이 있어서 기우의 계획이 초반에 다송이네 집에서 성사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무너지게 된 것도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시점부터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진다. 다송이의 생일을 위해 다송이네 가족이 집을 비운다. 이때 기택네 가족이 놀자판으로 다송이네 집에 머물게 된다. 기택 일가족은 '다송이네 가족과 그 외 아무도 오늘 집에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들의 집인 것처럼 집을 어질러 놓는다. 아무도 집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계획과는 다르게 일단 문광이 벨을 누르면서부터 믿음이 와르르 깨지기 시작한다. 믿음으로 묶여있던 벨트가 마치 믿음이 없어지자 마구잡이로 풀리는 형국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에 봤을 때 절망적으로 느꼈던 지점은 상류 계층(다송이네)과 하류 계층(기택 일가족, 문광 부부)이 명백하게 나뉘고, 기우의 계획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하류 계층에서 상류 계층으로 가려는 마지막 기우의 계획(=돈을 많이 벌어서 박사장네 집이었던 그 집을 사려는 것) 마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류 계층에 감정 이입하면서 보게 된다. 우리가 그들에게 감정 이입이 들어가는 이유는 박사장이 기택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언젠가 인터뷰를 봤던 거 같은데, 그 냄새가 처음에는 쾌쾌한 냄새라고 관객들이 추측하게 해서 관객들이 자신은 저런 하류 계층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 장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사장이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하자 우리는 그 순간부터 이 영화에서 하류 계층을 나타내는 기택네 가족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류 계층이 범죄를 저지르고 기생충과 같이 묘사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옛날에 다른 친구와 나눴을 때, 나를 위로하면서(?) '그런데 그들은 솔직히 좋은 사람은 아니었잖아'라고 했었다. 하지만 어떤 영화이든 간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흑백 논리로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것은 좋은 접근이 아닌 것 같다. 영화는 현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감독이 제작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 모두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뇌피셜로 쓰는 해석이지만 하류 계층이 저지른 일이 상류 계층이 저지른 일보다 더 컸던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하류 계층의 이미지와 상류 계층의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상류 계층이 범죄까지 갈만한 일을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 뉴스를 접할 때, 재벌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보다 사회적 약자가 범죄를 저지를 때 더 눈에 띄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계급 사회를 선망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작품에서 리스펙트!라고 외치는 오근세와 다송이네를 보고 부자니까 성격이 좋다고 말하는 기택 일가족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가 희망을 주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희망을 주는 영화를 보고 싶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이 나쁜 건 아니다.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처한 사회적 현실을 회피하면 안 된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매개체 중 하나로 이번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마무리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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