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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Oct 20. 2021

'물뽕' 맞은 기자

버닝썬, 마지막 이야기 #15.

 클럽 내 범죄가 발생했다. 수사기관은 그것을 묵과했다. 


 불편한 진실은 점차 세상에 알려지고, 클럽을 둘러싼 이해 집단들. '악의 카르텔'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괴물의 존재에 세상 모두의 시선이 쏠렸지만, 한쪽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약물 성폭행 피해자들. 소위 '물뽕'이란 유령의 약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 피해 여성들이다. 그래서 피해 사실 조차 당당히 알릴 수 없었던 약자들이다. 가해자들은 100% 무혐의 또는 불기소 처리가 돼버리고 마는 억울한 현실. 피해자는 존재했지만 가해자는 없었다. 피해 여성들은 사방에다 아무리 원통한 이야기를 외쳐 봤자 소용이 없었다.    


 물뽕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물 성범죄는 20년이 넘게 반복돼 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불법 유통 업자들을 적발하고 수많은 물뽕들이 현장에서 압수됐지만 약물로 인한 피해 사실은 단 한 건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1) 유령의 약물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 사실이 없으니 법 조항 단 한 줄 조차 바뀌지 않았다. 


 우리는 이 답답한 상황을 알려야 했다. 사건의 단순 전달자로서의 보도 기능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형식적인 전문가 인터뷰와 현상만 다루는 하나마나한 기사는 쓰지 말자. 그래서 우리는 무모하고도 위험한 시도를 결심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피해자와 똑같이 기자가 직접 물뽕을 경험하기로 했다.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이미 귀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세상 어느 누구도 믿어 주지 않는 피해자들의 상황과 마음을 그대로, 똑같이 기자가 경험해 보는 것이다. 언론이 할 수 있는 '공익적 시도의 최대치'. 사회에 던져진 충격적인 이슈는 단번에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물뽕을 맞는단 말인가?'


 자칫 사방의 삿대질을 받게 될 후배를 어떻게 지목한단 말인가.. 내가 직접 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가슴을 죄여 왔다. 이렇게 까지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화가 나고 아팠다. 이렇게 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줄까? 우리의 간절함이 과연 통할까? 자칫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불안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다행히 제일 고참인 이기주 기자가 용기를 내 직접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너무 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선 후배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기뻤다. 특정 약물을 몸에 투여한다는 것은 아무리 전문가와 함께 실험을 진행한다 해도, 또 그것이 완전한 공익을 위한 목적 일지라도 두렵고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배는 단호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마주했던 피해자들은 이미 후배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렇지만, 물뽕 체험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다. 때문에 우리는 철저하게 전문성을 갖춘 기관과 전문가의 검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이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 황당하고도 발칙한 아이디어는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에서 시작됐다. 나는 뉴스가 나가고 나면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더라도 다 읽는다. 어느 날 뉴스데스크로 나간 ‘눈물의 물뽕 피해자들’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 가운데 유독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독일의 어느 방송에서 물뽕의 폐해에 대해 기자가 직접 실험한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독일에서도 사회적으로 물뽕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독일 방송사의 한 여기자가 직접 마취 전문 병원에서 물뽕을 체험해 경각심을 알린 방송이었다.  


독일 방송 기자가 물뽕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서 의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독일 갈릴레오TV)


 ‘이거다!’


 이기주 기자는 독일 뒤셀도르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병원 시술실. 


 시술 의자는 자연스럽게 뒤로 젖혀지는 치과 의자처럼 생겼다. 이기주 기자는 수술 복장을 착용하고, 소독을 마친 후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2.5ml의 미다졸람을 기자의 몸에 투여했다. 약간의 졸음이 찾아왔지만 의식은 멀쩡했고, 대화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약물 때문인지 시차 때문인지도 모를 정도의 피곤함뿐이었다.


 10분 뒤, 의사는 2.5ml의 미다졸람을 추가로 투여했다. 이번에는 의사가 기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름과 소속, 취미, 독일에 대해 아는 대로 답할 것을 요구했다. 답변은 술술 나왔고, 멀쩡하게 대화를 나눴다.  

 의사는 이윽고 종이 한 장을 가져오더니 MBC 회사 주소와 취재 중인 강남의 클럽 이름, 독일로 오는 비행기의 기내식 종류를 적게 했다. 이기주 기자는 또박또박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의사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의자에서 내려와 왔다 갔다 몇 걸음 걸어볼 것을 요구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걷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이기주 기자는 정신이 너무 멀쩡해 취재가 실패한 것 같다며 의사에게 걱정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무거워진 눈꺼풀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잠든 지 15분. 깨어난 뒤, 그가 의사에게 던진 한 마디는 매우 놀라웠다.


 "실험은 언제 진행 하나요?"


 의사에게 걸어보는 실험을 하기로 해놓고는 왜 하지 않느냐는 기자. 그 순간, 현장에 있던 통역요원을 비롯한 취재진 일행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자는 의사의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과 수첩에 적은 내용, 수술실을 왔다 갔다 걸었던 사실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10분! 잠들기 전 10분이 사라졌다.

 기자의 머릿속에서 10분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내가 걸었다고?’


 이기주 기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의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수첩에 옮겨 적는 이기주 기자
약물이 투여된 상태에서 의사의 지시대로 걷고 있다
잠에서 깬 뒤 본인이 적은 수첩 내용을 보며 놀라고 있다




 실험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2가지가 해결돼야 했다. 피 실험자의 주관성을 없애고, 해당 약물의 효력에 대한 전문적이고, 공신력 있는 검증이 필수였다. 


 우리는 우선 전문가 자문을 통해 불법 약물인 ‘GHB’ 대신 똑같은 작용을 하는 의료용 마취제인 ‘미다졸람’2)을 사용하기로 했다. 일종의 수면 유도제다. 약물 투여는 해당 병원의 전문의 문진 이후 약물 처방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행여나 실험 과정에서 취재기자의 ‘의지’가 반영돼 실험 결과의 객관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차단해야 했다. 그래서 참여자를 한 명 더 선정했다. 현지의 독일인 지원자3)를 섭외해 함께 실험을 진행했다. 물론 현지 참여자의 실험 결과 또한 이기주 기자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실험은 병원의 책임 닥터가 전담했다.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용 실험을 진행했고, 명확한 의료윤리 등에 따라 병원의 감독하에 진행됐다는 서류를 따로 발급받았다. 약물은 독일 현지 방송사가 했던 방식과는 달리 주사기로 투여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콜라든, 물이든, 술이든 그 안에 약물을 타면 마시는 사람에 따라 한 모금의 양이 달라서, 얼마나 약물이 몸속에 들어갔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주사기 투여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안전하고 정확하다는 것이 병원 측의 견해였다. 



 뒤셀도르프의 병원 책임 의사는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이렇게 얘기했다.


 “GHB를 술에 타는 행위는 상대방이 얼마나 술을 마신 상태인지, 술에 탄 GHB의 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어 자칫 호흡 곤란 등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구토를 해 뱉어낸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의사는 물뽕을 알코올에 타 범죄에 사용하는 건 살인행위와 같다고 말했다. 약물이 알코올과 함께 작용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만큼 부작용 우려 또한 커지는 것이다. 


 알코올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데, 약물이 추가되면 더 큰 자극이 뇌에 미치게 된다. 물뽕의 특징은 겉모습만 보고는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워낙 멀쩡해 보여 몸 안에 약이 투여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취한 듯 천천히 라도 말하고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뇌의 자유의지는 완전히 상실된 것이다. 그 말은 즉, 누군가 이끌어 가려고 하면 끌려가고 앉으라 하면 앉게 된다는 뜻이다.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뇌가 작용하거나 본인 의지가 작용했다고 볼 수 없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뇌는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험 과정에서 본인이 수첩에 적은 단어들과 실험실을 왔다 갔다 걸었던 기억이 나지 않았을 때 이기주 기자는 강남 한복판을 맨발로 뛰어다닌 그 물뽕 성폭행 피해자가 떠올랐다고 한다. 기자는 이성이 100%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나타난 행동에 대해 완벽하게 공감하게 됐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기자 한 명은 물뽕 피해자의 심정을 100% 이해하게 됐으니까 말이다.


 실험을 마친 뒤, 취재진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병원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과정의 기억이 후배의 머릿속에서 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차 안의 대화도, 식당 앞 길거리에서의 대화도 죄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일행들은 이기주 기자가 아주 멀쩡하게 대화했다고 한다. 현지 통역 코디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며 기막혀했다. 그러나 후배는 오히려 이러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더 무서웠다고 한다. 


 전부 기억이 나질 않는 게 정말 사실이냐고 주변 사람들이 되물었을 때... 그때가 가장 크게 공포에 휩싸였다고 후배는 회상했다. 

 어쩌면 물뽕 피해자들에게는 성폭행의 순간도 악몽이었겠지만, 머릿속에서 온전히 사라져 버린 기억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의 공포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끝내 방송에는 나가지 못했다. 

 후배가 귀국한 직후, 회사 안에서 수많은 질문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우려했던 대로 약물 실험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왜 취재 기자가 굳이 직접 물뽕을 맞아야만 했는가?”

 “왜 독일까지 가서 이 위험한 실험을 진행해야 했는가?”

 “국내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물뽕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릴 수 있음에도 물뽕의 부작용을 굳이 화면으로 꼭 보여줘야만 하는가?”


 우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위험한 실험을 왜 했냐는 비난에 직면했다. 과연 해당 실험이 방송에 내보내기 적합한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뤄졌다. 수없이 설명과 설득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수긍을 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조직 내부의 반발은 생각보다 거셌다.     

  이렇게 까지 밖에 할 수 없었던, 아니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우리의 간절함은 조직의 우려 속에 묻혔다. 

 

 우리는 독일에서의 ‘약물 실험’이 불법은 아닌지, 의료 윤리에 위배되지는 않은지 국내 의료 전문가와 변호사, 시민단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고, 이에 용기를 얻어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실험으로 물뽕이 신체에 미치는 작용을 '오롯이'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만, 피해자들의 억울한 상황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시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도전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이 우리들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선한 의지와 신념만으로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가 직접 실험한 내용은 빠진 채, 독일 방송사의 실험만 인용해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파급력은 전혀 없었다. 우리의 메시지는 다른 수많은 기사들에 묻혔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도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는 며칠 잠을 자지 못하고 울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 그것은 ‘진정성’이다.


 다행히도 몇 가지 작은 변화는 있었다. 경찰청이 보도 이후 물뽕 성범죄에 대한 수사 매뉴얼을 신설했다. 20년 만에 물뽕에 대한 새로운 수사 지침서가 전국의 일선 경찰서에 배포된 것이다. 우리의 버닝썬 연속 보도들 때문이었다. 해당 지침서에는 독일 TV의 물뽕 실험이 참고됐다. 전국의 경찰에게 우리의 실험이 참고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이 쓰려왔다. 


 국회에서의 움직임도 있었다. 약물을 이용한 성폭행 피해를 일반적인 폭행이나 협박처럼 피해자의 의사 표시가 어려운 상황으로 같이 보고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20대 국회를 끝내 넘지 못하고 다른 수많은 민생 법안들과 함께 폐기되고 말았다. 

 형법 교과서 한 줄을 그렇게도 바꿔보고자 발버둥 쳤지만, 그것은 꿈이었다.


 강남의 한 클럽을 둘러싸고 벌어진 비현실적인 일들. 이 영화 같은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의 한 조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들이 하나씩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버닝썬 게이트는 단순 연예인 사건이 아니다. 

 클럽을 둘러싼 악의 카르텔이 바로 몸통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목소리를 내는 ‘약자’가 존재했다.  


 이곳에서 시작된 약자들의 작은 이야기가 결국 세상을 바꿔놓았다고 나는 믿는다.




1) 취재진은 대검 수사 기록상 GHB 물뽕을 유통하다 적발해 검거한 사례들은 찾았지만, GHB를 이용한 성범죄의 가해자를 검거한 사례는 단 한건도 발견하지 못했다.  


2)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강화시켜 진정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다.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짧은 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되므로 내시경 검사나 수술 전에 진정 목적으로 사용된다. (출처 : 네이버 약학 용어사전)


3) 리사 쇼넨펠트 (女, 독일, 99년생, 뒤셀도르프대 재학 중). 실험의 의도와 취지, 현재 대한민국의 GHB 범죄 상황에 대해 우리 측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 의사로 실험에 참여하였다.   


** 2021년 11월 17일 수원지방법원은 물뽕의 원료인 감마부티로락톤(GBL)을 사용해 여성 2명을 성폭행 약사를 최초로 구속했다. 물뽕 범죄가 인정된 첫 사례가 나온 것이다. 피해자는 성폭행 직후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고, 체내에서 물뽕이 검출됐다. 물뽕은 1~4시간만에 체내에서 사라져 버리는 약물이기에 피해 직후 검사를 받은 것이 주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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