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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Sep 30. 2021

두 얼굴의 정준영

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14.

 어느 날, 난데없이 ‘정준영’이라는 이름이 포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M-net의 ‘슈퍼스타 K’를 통해 뜬 연예인이다. 이후 그는 음악보다는 예능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정준영은 KBS의 1박 2일 멤버로 주가를 올렸고,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순진한 얼굴로 장난을 치던 그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그 내면에는 일그러진 성의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2016년. 1박 2일 시즌3은 국민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한창 시즌3을 촬영하던 그 당시, 정준영은 두 차례에 걸쳐 강원도 홍천과 대구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FT아일랜드 전 멤버 최종훈과 함께 집단 성폭행했다. 그리고 그는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지인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다.

 프로그램 속 천진난만한 막내 멤버가 눈앞의 카메라가 치워지자, 범죄자로 돌변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정준영에게 징역 6년, 최종훈에게는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해당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도 징역 4년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판사는 정준영과 최종훈에게 선고를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을 단순한 성적 쾌락 도구로 여겼다. 심하게 왜곡된 성의식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고통의 정도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극심하다.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

 

 정준영은 도촬(도둑 촬영)을 밥 먹듯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앞좌석에 앉은 여성의 다리를 찍어 동료 연예인 단톡 방에 올리는가 하면, 호텔, 아파트, 음식점, 술집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는 단톡방에 올렸다.

 

 그는 주도 면밀했다. 동영상 촬영을 들키지 않으려고 주로 10초 단위로 짧게 피해자의 뒷모습을 찍었다. 가히 병적이다. 촬영과 유포의 시간들을 살펴보니, 새벽 12시 24분. 3시 35분, 오후 2시 40분. 저녁 6시 35분.. 취미가 도촬과 유포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밥 먹듯이 촬영해 지인들에게 뿌렸다. 이 모든 내용은 검찰의 공소 사실과 판결 문안에 담겨 있다.   


 그는 가끔 도촬을 하던 중 피해 여성에게 들키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잘못했다며 삭제하는 것으로 무마했다. 아마도 그는 단지 장난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에게 장난식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도 많이 촬영하다 보니,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여성을 촬영했는지 인지하지 조차 못했다. 심지어 경찰 수사관이 범죄 사실을 제시할 때마다 “또 나왔냐”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정준영은 대부분의 영상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그것을 ‘황금폰’ 이라고 불렀다. 그는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황금폰을 초기화시켜버렸다.


 마침 정준영의 1심 판결문에 적시된 불법 촬영 내용을 KBS가 잘 정리해 놓았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발췌해 공개하겠다. 정준영이 도촬 했던 시간 순으로 정리했고, 공범과 피해자,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2차 피해의 우려가 있어 담지 않았다.




* 순서 : 촬영일자 / 촬영 장소 / 촬영 내용 / 유포 일시 / 유포 대상


1) 2015년 11월 /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 피해자 A의 몸 특정 부위를 만지는 동영상(동의하고 촬영했으나 유포 동의한 바 없음) / 같은 날 새벽 0시 24분 / OOO(가수)


2) 2015년 11월 /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 피해자 A의 몸 특정 부위 사진(동의하고 촬영했으나 유포 동의한 바 없음) / 같은 날 새벽 0시 56분 / 김○○(클럽 버닝썬 직원·정준영과 함께 기소, 징역 5년 선고)

※ 동일한 사진을 같은 날 오후 2시 15분 김○○·최종훈(가수·정준영과 함께 기소, 징역 5년 선고)·권○○(유명 걸그룹 가수 친오빠·정준영과 함께 기소, 징역 4년 선고)·박○○·허○(정준영과 함께 기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등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도 유포함.


3) 2015년 11월 /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 / 피해자 A의 몸 특정 부위 사진(동의하고 촬영했으나 유포 동의한 바 없음) / 같은 날 오후 2시 15분 / 김○○·최종훈·권○○·박○○·허○ 단체 대화방


4) 2015년 12월 / 정준영 집 / 피해자 뒷모습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12월 1일 새벽 3시 35분 / 김○○


5) 2015년 12월 / 정준영 집 / 피해자 C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5년 12월 9일 오후 2시 51분 / 김○○


6) 2015년 12월 / 타이완의 한 호텔 / 정준영과 피해자 D 성관계 동영상(동의 없이 촬영) / 2015년 12월 11일 새벽 2시 6분 / 이승현(가수 승리)·유 OO(유리 홀딩스 대표)·김○○·최종훈·권○○·박○○·허○ 단체 대화방


7) 2016년 2월 / 서울 강남구 / 정준영과 피해자 E 성행위 동영상(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2월 28일 새벽 1시 7분 / 이 OO(가수)


8) 2016년 4월 / 장소 알 수 없음 / 잠들어 있는 피해자 F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4월 21일 오후 6시 35분 / 김○○·최종훈·권○○·박○○·허○ 단체 대화방


9) 2016년 5월 / 중국 출발 항공기 안 / 의자에 앉아 있는 승무원 특정 신체 부위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5월 6일 오후 2시 40분 / 정○○·이○○·김◇◇ 단체 대화방

※ 같은 사진을 같은 시각 이종현·김○○·김□□·박○○·허○ 단체 대화방에도 유포함.


10) 2016년 5월 / 정준영 집 / 정준영과 피해자 G 성행위 동영상(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5월 26일 오전 10시 20분 / 이 OO·김○○·김□□·박○○·허○ ·김▽▽ 단체 대화방


11) 2016년 6월 / 정준영 집 / 피해자 H의 뒷모습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6월 19일 오후 5시 26분 / 이 OO·김○○·김□□·박○○·허○ ·김▽▽ 단체 대화방


12) 2016년 6월 / 일본 소재 호텔 / 피해자 I가 탈의 사진(동의 없이 촬영) / 2016년 6월 23일 오전 5시 51분 / 이 OO·김○○·김□□·박○○·허○ ·김▽▽ 단체 대화방




 상상을 초월할 만큼 도촬과 유포는 시도 때도 없었다.  

 정준영과 최종훈은 판결이 선고된 직후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참회와 후회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감옥에서 지내야 할 6년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진정한 반성의 눈물이었을까..  

 정준영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본인이 직접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의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됐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저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며 용서를 빌었다.


법정 앞에서 정준영이 직접 들고 읽었던 자필 편지를 취재진이 찍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고, 법정 다툼이 본격 진행되자 정준영은 입장과 태도를 바꿨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사건 당일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셔서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최종훈은 아예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준영은 최종훈과 함께 성관계를 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결국, 두 명 모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선고 하루 만에 판결에 불복하고 바로 항소했다.   


 2심에서 최종훈은 피해자와 사건 이후 합의를 했다며 형량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정준영은 선고기일 직전 반성문을 두 차례 제출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정준영이 반성의 기미가 있다고 보고 형량을 1년 감량했고, 최종훈의 형량은 절반으로 줄여줬다. 그러나 이들은 또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물론 대법원에서는 2심의 형량이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에서 억울함을 주장하고, 공소사실에 대해 다투는 것은 당사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리고 형량을 낮춰줄 것을 바라는 것 또한 권리다. 하지만 전 국민 앞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며,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눈물로 사죄했던 사람이 곧바로 재판정 안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돌변했다. 그 과정을 지켜봤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준영 성범죄 동영상 사건은 블랙홀처럼 모든 걸 집어삼켰다.

 

 그 과정 속에서 대중들의 잔인함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동영상 속 여성들을 궁금해했다. 급기야 어떤 이들의 지저분한 상상력으로 엉뚱한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이 포털에 오르내렸다. 2차 가해, 3차 가해가 서슴없이 이어졌다. 심지어 동영상 속 장면이 묘사된 지라시 까지 나돌았다. 연예인 사건으로 비화된 성범죄 이야기들만 난무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숨겨졌던 그들의 아픈 이야기는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피해자 중 한 명이 더 이상 2차 가해를 막아달라며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올렸다. 정준영에 의한 피해 사실을 주장했다가 역고소에 대한 두려움과 소송의 부담감으로 고소를 취하한 그녀를 사람들은 꽃뱀으로 몰아세우며 2차 가해를 서슴없이 해댔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악플에 시달렸고, 무책임한 언론과 유튜버들의 가짜 뉴스에 처참히 짓밟혔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용기를 내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변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법과 제도와 사회의 외면 속에서 피해자 혼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정준영 성범죄 동영상 사건은 결코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이 아니다.


 정준영은 그냥 성범죄자다. 버닝썬 게이트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냥 잡범이다. 승리의 사업 투자자 성 접대 의혹도 본질이 아니다. 하지만 이슈는 이슈를 덮었다. ‘버닝썬 게이트’가 ‘성범죄 게이트’로 둔갑해 버렸다.

 이때가 버닝썬 게이트가 열린 지 3개월 즈음이었다. 버닝썬을 둘러싼 경찰 수사도 한창 탄력을 받던 시점이었다. 경찰은 버닝썬의 1년 치 회계 장부를 압수해 분석에 들어갔고, 클럽 버닝썬의 미성년자 출입 무마 사건 관계자 들을 속속 조사하며 수사망을 확대하고 있었다.

 

 더욱이 수사당국은 강남 클럽들의 탈세 의혹에도 칼을 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찰은 강남의 최고 클럽인 '아레나'의 탈세 규모가 기존에 알려졌던 2백억 원 대 보다 훨씬 큰 6백억 원 대로 보고 이를 조사했던 세무당국을 압수수색하기 까지 했다. 국세청의 클럽 봐주기 의혹이 팽배했던 상황이었다. 폭행과 마약 같은 범죄를 넘어서 또 다른 국가 기관의 숨겨진 유착 비리가 드러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게 이러한 수사는 단발성으로 이뤄지기 힘든 수사다. 사회 여론의 흐름을 타고 수사가 시작되기도 하고, 더욱 탄력을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기'와 '분위기'가 참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범죄 정보가 포착됐다 하더라도 뜬금없이 곧바로 수사로 이어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수사에도 ‘기세’가 작용한다. 여론의 흐름을 타고 기세로 부정부패를 몰아내 쳐버리는 것이다. 버닝썬 게이트를 향한 수사의 칼끝은 사회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었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도려내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정준영 성범죄 동영상 사건은 모든 이슈를 마치 깔때기처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강남 일대 클럽을 둘러싼 물뽕 성범죄와 마약, 유착, 탈세 등 사회의 종양과 같은 ‘악의 카르텔’은 수면 위로 겨우 떠오르는가 싶었지만..


 다시 깊고 어두운 심해로 가라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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