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버닝썬과 최순실이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떤 의도로 전혀 상관없는 이 둘을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지어내 퍼트린 걸까? 한창 버닝썬 보도를 이어가던 우리를 상당히 괴롭혔던 것 중 하나가 엉뚱하게도 최순실이었다.
최순실 의혹은 정치권에서부터 흘러나왔다. 김상교 씨를 클럽 내에서 최초로 폭행한 사람이 최순실의 조카라는 의혹이었다. 버닝썬 VIP 중 한 명이 최순실의 조카 서 모씨였고, 이 서 모씨가 김상교 씨를 폭행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다. 기가 찼다.
일부 언론들은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단정적 주장과 의혹 제기가 남발됐다. 더욱이 일부 유튜버들은 버닝썬과 국정농단을 연관 지으며 곧 엄청난 폭로를 하겠다며 조회수 장사를 했다. 대부분이 그냥 소설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김상교 씨 최초 폭행자는 최순실 조카인 서 모 씨가 아니라 그냥 자영업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일반인 VIP 손님이었다. 김상교 씨는 이 책의 시작에서 언급한 것처럼 클럽 정문 앞에서 버닝썬 이사 등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클럽 안에서 먼저 성추행 시비 끝에 손님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김상교 씨와 클럽 안에서 시비를 붙은 자가 최순실의 조카이건, 할아버지 이건 간에 이게 버닝썬 게이트 문제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클럽을 둘러싼 수많은 범법행위 들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악의 카르텔’의 실체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순실이 등장하면서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버렸다. 나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고, 답답했다.
실제로 한 국회의원은 심지어 대정부 질문에서 대놓고 최순실 조카가 최초 폭행자라고 주장하며 정부의 사실 관계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의원실은 그날 저녁 기자들에게 해명 문자를 보내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 OO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엉뚱한 의혹 제기를 한 뒤 저녁 6시 30분쯤 기자들에게 보낸 해명 문자이다
버닝썬은 사람들의 이목을 한방에 끌 수 있는 유혹 덩어리다. 버닝썬 이라는 단어 하나에 눈과 귀가 집중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버닝썬을 그들의 정치적 프레임 안으로 어떻게 해서든 끌어들이려 했다. 다수의 국회의원실에서 버닝썬을 자기 진영에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라붙었다.
급기야 ‘버닝썬 사건 관계도’라는 인물 지도까지 등장했다. 이 관계도 속에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존재했다. 최순실 씨를 비롯해 조카인 서 모 씨,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심지어 장자연 리스트 속 인물들까지 등장했다. 나아가 버닝썬 사장 승리가 소속된 YG, 그리고 YG의 2대 주주인 네이버 의장의 둘째 아들까지도 관계도에 그려 넣었다. 최순실 씨의 조카 서 모씨는 김무성 전 의원의 사위와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의 아들과 SNS 친구 사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조직도는 강남의 클럽과 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박근혜 정부 사이에 마치 보이지 않은 악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고 있었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버닝썬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인데.. 어쩌면 버닝썬에 한두 번씩 놀러 갔을 수 도 있겠다. 그런데 이들을 다 싸잡아 악의 거미줄로 모두 묶어 버렸다. 일종의 마녀 사냥으로 보였다.
버닝썬의 마약, 탈세 등 불법과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자, 실체가 귀결되는 몸뚱이는 바로 이들이라고 지목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버닝썬 사건을 이용한 그들에게 사건의 본질은 중요치 않고 정치적으로 공격 타케팅 설정만이 중요했다.
실제 모 의원실이 만들어 뿌린 버닝썬 게이트 관계도
이들 중 버닝썬과 실제 관련이 있다고 증명된 사람은 없다.
정치권의 무차별적 의혹 제기에 처음부터 버닝썬 사건을 아젠다 세팅을 해오던 우리로써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꾸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움직임,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버닝썬 사건을 이용하는 무리들.. 이것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일단 버닝썬 게이트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러한 가짜 뉴스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회사 내외에서 이것 또한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에 나는 매일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들을 우리가 다루는 것 자체가 정치권의 프레임에 우리 스스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이용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을 호도하려는 무리에 흔들리지 않고 버텼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살아 움직이고, 그만큼 변화무쌍해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살아 움직이는 하이에나 같은 정치 집단들은 득달 같이 달려들어 그들의 허기를 채우려 했다. 심지어 여당의 한 인사는 김상교 씨에게 접근해 제2의 국정 농단 사태로 키우자고 실제로 제안까지 했다. 그리고 야당은 버닝썬 게이트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며 어처구니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많은 언론들 또한 이에 편승해 검증 안 된 보도들을 남발하며 국민들을 더 혼란에 빠트리게 했다. 모두가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불손한 의도가 섞인 천박하고, 진실되지 않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