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버닝썬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늘은 사장인 승리의 생일이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던 승리가 문득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격앙된 목소리로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등장한 한 이름.
“우리 린 사모님, 린 사모님.. 정말 감사하고요!”
‘린 사모’
이름이라기보다는 애칭이다. 사모님인데 성이 린 씨다. 참으로 독특하다. 가만 보니 우리나라 이름이 아니다. 승리가 부른 이름은 바로 타이완인 여성 ‘린이쥬’ LIN YI JU 다. 버닝썬 클럽 사람들은 그녀를 ‘린 사모’라고 불렀다.
MBC로 들어오는 제보 중에 유독 린 사모와 관련된 제보들이 많았다. 제보 가운데는 서류도 있었고, 사진과 동영상도 있었다. 그 가운데 내 눈에 유독 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린 사모로 추정되는 여성이 빅뱅 멤버인 지디와 찍은 사진인데, 손에는 은색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핸드백 겉면에는 에메랄드 빛 LED 글자가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샤넬 (CHANEL)'
우리는 단번에 린 사모가 샤넬 마니아인 것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옷과 팔찌, 목걸이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샤넬’이었다.
린 사모는 연예인들을 만날 때 종종 딸들과 함께 사진을 같이 찍었다
클럽에서 여러 연예인들과 자연스럽게
승리뿐 아니라 다른 많은 연예인들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이 여성.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정체가 궁금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취재를 시도했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순 없었다. 그러나 다만 그녀는 타이완에서 알아주는 돈 많은 큰 손인 것만은 분명했다.
버닝썬 사건이 터진 뒤 타이완 현지에서까지 이슈가 되면서 타이완 언론들도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매체는 그녀가 명품 '한정판'을 애호하는 기분파 VIP 고객이라고 소개했다. 매체는 그녀가 샤넬 파티에서 빅뱅 멤버들과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녀는 자신이 승리의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린 사모는 실제로 버닝썬 지분의 20%를 소유하고 있었다.
참고로 유리 홀딩스는 박한별의 남편인 유 OO 씨의 성인 '유'와 승리의 '리'를 합쳐 만든 외식업 회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린 사모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투자이민자 비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린 사모는 대한민국에 예치금 5억 원을 내고 공익사업 투자이민자 비자를 받아 가족들과 함께 자유롭게 우리나라를 드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버닝썬을 비롯 부동산 등 수백억 원대 투자도 시작했다. 린 사모는 클럽에서 수시로 수천만 원씩, 많게는 1억 원어치의 술을 쏜 적도 있다고 버닝썬 직원들이 우리에게 증언했다. 승리가 생일에 린 사모님 감사하다고 외칠만했다.
린 사모는 버닝썬 관계자들에게 종종 파티를 열어주고 고가의 선물도 해줬다고 한다 (출처 : 당시 버닝썬 관계자 인스타그램)
이 미스터리의 여성은 언론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린 사모가 중화권 대형 범죄조직인 ‘삼합회’ 1)와 연관이 있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아무리 베일에 싸여있는 타이완인 여성 재력가라고 하더라도 삼합회를 끌어들이다니.. 해도 너무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삼합회 간부가 버닝썬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버닝썬 직원의 증언과, 린 사모를 둘러싼 주변의 젊은 남성들의 존재에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는 린 사모와 삼합회, 그리고 버닝썬을 연관 지었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왜 뜬금없이 버닝썬 사건에 삼합회를 끌어들였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린 사모가 삼합회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로 이러한 사진들을 제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기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린 사모는 삼합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확인한 결과 린 사모는 삼합회 조직과 관련성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녀가 우리나라에 입국할 때 어떠한 남자와도 동행한 기록도 없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등장한 젊은 남성들은 단지 린 사모의 국내 조력자 들일 뿐이었다. 한국의 여러 시스템에 익숙지 못한 린 사모를 도와주고 그녀의 자금도 관리해주는 한국인과 조선족 젊은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각종 포털의 검색어 1위는 삼합회로 도배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린 사모가 삼합회의 일원이자, 클럽 버닝썬에 해외 검은 조직을 끌어들였다고 믿어 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검은 조직 삼합회. 방송용 소재로 아주 섹시하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률 재미는 봤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국민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법. 그것을 타인완인 부자가 지키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서울 강남의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높이 555m의 이 거대한 타워에 초고가 레지던스 하우스가 있다. 분양가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초호화 팬트하우스다. 배우 조인성과 클라라 등 유명 연예인들이 이곳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린 사모는 이곳 펜트하우스 한 채를 240억 원에 사버렸다. 그녀는 서울의 최고가 부동산을 골라서 수집했다. 린 사모가 구입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은 우리가 확인한 것만 3채에 달했다
린 사모는 관세청에 한 번도 현금 반입을 신고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강남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는데, 해외자금을 반입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우리나라 주요 핫 플레이스의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탈세는 없었는지, 혹 검은 돈이었을지도 모르는 자금이 세탁되거나 하는 불법적 정황은 없었는지 수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버닝썬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인 타이완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경찰은 뒤늦게 타이완에 있는 린 사모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삼합회 등 엉뚱한 곳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을 때 본질적 문제는 덮이고 말았다.
그런데 반전이 숨어있었다.
린 사모의 진짜 꿍꿍이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빅뱅’
린 사모는 ‘빅뱅’의 ‘빅 팬’이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팬이었다.
빅뱅 사인을 받은 린 사모의 샤넬 가방
서울 성수동에 있는 갤러리아포레.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 중 하나인 이곳에 린 사모는 2017년 주택 한 채를 38억 원에 사버렸다. 그런데 그녀의 앞집이 바로 GD의 집이었다. 최고급 주택을 샀는데, 우연히 앞집이 GD의 집이었을까? 아니면 GD의 집이 같은 층에 있다는 걸 알고 사버린 걸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GD는 정작 그 집에 들어가 산 적은 별로 없었단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린 사모가 엄청난 범죄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버닝썬을 통해 뭔가의 거대한 금전적 이익을 봤거나, 또 그러기 위해서 버닝썬을 이용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나라 연예인들과 가까워지길 원하는 친한파 타이완인 부자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 투자를 해야 했고, 그녀가 생판 모르는 나라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현지 시스템을 잘 아는 조력자들을 구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그 조력자들이 버닝썬 이라는 놀이터에서 린 사모를 등에 업고 그러한 탈법적인 행위들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린 사모의 버닝썬 투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라기 보단 사교 행위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물론 그 과정 속에 불법적 행위들이 있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린 사모는 우리나라에 대한 동경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는 10대인 두 딸이 있었는데 모두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시키고 싶어 했고, 실제로 국내 학교에 유학을 진행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두 딸이 우리말을 상당히 잘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빅뱅을 향한 린 사모의 사랑은 어쨌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의혹의 실체를 수사해야 하는 경찰은 난감해졌다.
1) 중화권의 마피아를 일컫는데, 일본의 야쿠자와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 범죄 조직이다. 삼합회는 홍콩과 마카오, 싱가포르, 타이완 쪽의 특정 조직이다. 타이완 삼합회는 정부와도 결탁해, 대놓고 활동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