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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충환 Jul 15. 2021

팬티 속의 녹음기

버닝썬,숨겨진 이야기 #10.

 퇴근길, 나는 소금물에 절인 배추 같은 몸뚱이를 겨우 집 현관문 안으로 욱여넣고 있었다. 버닝썬 사건이 시작된 지 2주.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 탓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밤이 이어져왔다.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이 녀석, 나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소리쳤다.    


 “캡, 소름이 돋아 서요!”


 제보가 들어왔는데, 과거 버닝썬에서 발생한 어느 사건에 전, 현직 경찰관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몽롱했던 정신에 찬물을 끼얹은 듯 눈이 번쩍 떠졌다. 본격적으로 사건의 중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후배는 곧바로 그를 만나기 위해 강남으로 향했다.




 밤 10시.  약속시간보다 30분은 지났는데.. 제보자가 많이 늦는다.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일까? 두려움에 걱정이 돼서 마음이 바뀐 걸까?'


 후배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사건이다. 요즘 시대에 경찰 유착이라니..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아무리 제보를 했다 하더라도 방송국 기자와의 만남이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잠시 뒤, 카페에 들어온 한 남성. 생각했던 것보다 덩치가 꽤 컸다. 성큼성큼 남자가 다가온 순간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딱 보아하니 술 한 잔 걸치고 온 듯하다.


 기자 : “안녕하세요. MBC 기자입니다. 제보하신 분이죠?”


 그런데 남자가 던진 첫마디가 황당하다.


 제보자 : “지금 녹음하는 거 아니죠?"


 남자의 손이 후배의 겉 주머니를 향해 쓱 향하더니 더듬는다. 상당한 결례다. 아무리 제보자라지만 첫 만남에 몸에 손을 대다니.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후배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기자 : “절대 그럴 리가요”


 다행히 준비한 녹음기는 안주머니에 있어서 들키지 않았다. 남자는 저돌적이면서도, 말투 또한 일반인과 달리 거칠었다. 험한 바닥에 꽤 몸을 굴렸을 것 같은 건달 기운이 표정과 말투에서 풍겨져 나왔다. 후배는 음료를 주문한 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서 만일에 대비해 안주머니에 있던 녹음기를 팬티 속에 넣었다.

 

 '녹음이 잘 될까?'


 불안했다.

 

 '오버일까?'


 그가 다시 주머니를 뒤지다 들키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다.

 

 '그래 들키는 것보단 낫다'  


 테이블로 돌아오자 제보자는 본격적으로 전, 현직 경찰관들과 버닝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본인이 버닝썬 대표로부터 돈을 받아 전직 경찰관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전직 경찰관은 버닝썬과 현직 경찰관을 연결해주는 소위 브로커로 보였다.


 제보자는 굉장히 예민했다.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뭔가를 계산하는 눈치였다.

 그가 말한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클럽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출입 사건의 해결을 위해 버닝썬 대표로부터 2천만 원을 전달받아 브로커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리츠칼튼 호텔 로비에서 만나 돈을 배달했다는 것이다. 지어낸 얘기라기에는 시점과 상황, 등장인물 등이 상당히 디테일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후배는 제보자에게 통화내역이나 문자 메시지, 카톡 캡처 같은 직접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제보자는 끝까지 보여줄 듯 보여줄 듯하다가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헤어지기 직전 카페 밖에서 입금 내역의 문자 메시지를 하나 보여 줬다.


 ‘지어낸 얘기는 아니구나..’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팬티 속에 숨길 생각을 했을까? 녹음이 안됐으면 어쩌려고. 우리로선 굉장히 중요한 제보였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나는 혹시나 음성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비해 후배에게 제보자와 나눴던 대화를 헤어지자마자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종이에 옮겨 적을 것을 지시했다. 녹취가 없더라도 기자가 직접 들은 얘기를 글로써 기록에 남기면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취재 중간중간 수첩에 적는 메모들도 기자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 행위이다. 다행히 제보자와의 대화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녹음이 됐다.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수시로 녹음을 한다. 특히 방송기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녹취는 뉴스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진실의 조각 중 하나로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에 직접 쓸 수는 없어도 기사 구성을 위해 꼭 녹음을 한다. 나중이라도 보도가 소송으로 이어지게 되면 증거로도 활용될 수도 있다. 또, 녹취를 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으면 사실상 법적으로 방송에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적 가치가 더 클 경우에 소송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방송에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실제 보도에 착수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소위 ‘결정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보자의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만날 동안 그의 증언은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법정에서도 피고나 원고, 또는 증인의 일관된 진술은 재판부가 진실로 판단하는 큰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취재 과정에서 결정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제보자가 지목한 전직 경찰관이 우리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그가 버닝썬 대표에게 사건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됐다'


 기자들은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드는 심정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제보자의 조력으로 버닝썬과 경찰 유착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전직 경찰관은 끝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버닝썬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금품 제공 사실을 인정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버닝썬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징역 1년과 추징금 2천만 원의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버닝썬 사건이 세상에서 잊히기 시작할 즈음인, 사건 1년 뒤. 이 전직 경찰관은 상고를 통해 2심에서 무죄를 얻어냈다.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금품을 제공했다는 버닝썬 대표의 증언이 1심에서는 인정이 됐지만, 2심에서는 돈이 건네질 당시 당사자들이 해당 장소에 실제로 갔는지 객관적 자료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있다고 2심은 판단한 것이다. 

 뇌물 사건의 경우 유죄로 선고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게 이러한 이유가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가 버닝썬에서 일부 들춰낸 불편한 진실은 세상에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가을 국정감사를 앞두고 서울지방경찰청은 버닝썬 연루 경찰관 40명을 찾아내 이 가운데 3명을 파면시켰다. 충격적인 사실은 파면된 3명 가운데 1명이 김상교 씨 클럽 집단 폭행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찰관은 황당하게도 다른 사건의 강간 미수 혐의로도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단 버닝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수사는 다른 클럽들로 확대됐다. 또 다른 클럽의 미성년자 출입 사건과 관련해 무마를 대가로 수백만 원의 금품을 받은 경찰관도 파면됐다.

 

 이 경찰관은 파면 직전까지 광역수사대 소속으로 버닝썬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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