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충환 Jul 02. 2021

"상식적으로 클럽에서 마약을 유통했겠습니까”

버닝썬, 숨겨진 이야기 #9.

 후배들은 나를 ‘캡’이라고 불렀다.


 캡틴의 줄인 말이다. 운동선수로 치면 그 팀의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언론사 사회부에서는 ‘캡’이라고 불린다. 연차 어린 주니어들이 모여 있는 팀의 교관이기도 하고, 사회부 보도를 기획하는 디렉터 이기도 하다. 그래서 후배들은 나를 ‘선배’ 보단 ‘캡’으로 불렀다.


 ‘캡’ 들은 일종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 언론사의 경찰 기자들을 총괄 지휘하기 때문에 경찰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찰 고위층이나 주요 수사팀과 수시로 접촉이 가능하다.

 버닝썬 초기, 나는 이 사안에 대해 경찰과 협의를 했다. 클럽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과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의견을 전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한 고위직 경찰은 나에게 놀라운 말을 했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피해 사실을 근거로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꽃뱀’을 의미하는 거였다.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특정된 사건을 거론했다. 클럽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사건들을 얘기한 자리였지만, 사건의 본질이 아닌 '꽃뱀'이 등장한 것이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항상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지만, 당시 경찰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화였다. 나는 ‘피해자’가 보이는데, 경찰은 ‘가해자’로 보이나 보다.


 국가기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그 힘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위해 써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피해자가 있다면 찾아내 살펴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힘은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다.




 버닝썬에 대한 마약 수사가 막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경찰이 기자들을 상대로 첫 언론 백브리핑 1)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기자 : “버닝썬 클럽 내에서 마약이 조직적으로 유통됐습니까?”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을 했다.


 경찰 고위 관계자 : “상식적으로 몇십억 씩 버는 클럽에서 마약을 유통했겠습니까”


 그 순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수사 초기였다고 하지만,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마인드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더욱이 그 자리는 앞으로의 수사 방향과 의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브리핑이 끝나고 곧바로 비난 기사가 쏟아졌다. 경찰은 그 한마디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 고위직 경찰은 이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큰 의미를 담지 않고 내뱉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버닝썬이 클럽 내에서 '조직적'으로 마약을 유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팀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약이 클럽 내에 퍼지기 시작한 이후 매출이 급상승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클럽 차원의 조직적 유통이 아니어도 점조직으로 퍼져있을 가능성이 컸다. 버닝썬의 전직 직원들은 우리에게 시점까지 특정해줬다.


 버닝썬 마약 의혹을 제기한 지 한 달만에 경찰이 사상 최대 규모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국 마약 수사관 1천 명이 동원됐다. 마약 수사대뿐 아니라, 광역수사대와 지능범죄수사대까지 최고의 엘리트 경찰들이 투입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먼저 전담팀을 구성했다. 16개 팀, 152명. 단일 사건으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최대 규모였다. 버닝썬 사건 1년 전인 2018년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경우에도 수사 인력은 불과 40여 명에 불과했다.

 과감히 칼을 빼 든 만큼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 마약 사범 3천9백94명을 검거하고 9백20명이 구속됐다. 클럽과 업소를 둘러싼 검은 약물 카르텔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찰의 첫 언론 브리핑 때 그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을 했어야 했다.  


 “상식적으로 클럽이 몇십억 씩 버는 이유가 있겠죠.

 ‘불법적 인과관계’는 없는지 수사 중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 ‘불법적 인과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는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단순 마약 이야기가 아니다.



1) 백 브리핑은 정부기관 관계자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온 브리핑이 아닌, 촬영을 배제한 채 기자들에게 해당 사건의 설명만 하는 브리핑을 말한다.

이전 09화 유령의 약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