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마음, 공개
추석 연휴에는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특별히 사랑의 마음 가득 담아 가족들을 바라보길 소원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는 사랑을 쉽게도 말하면서,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사람을 여유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러기로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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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고 새 물건을 잘 사지도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물건을 사서 얼마나 쓰겠냐는 식인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는 따뜻한 물 틀지도 않습니다. 화장실을 쓸 때 불을 키는 일조차 아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냉장고나 방안 곳곳에 못 먹고 못 쓸 것 같은 음식이며 물건이며
자꾸만 쟁여두어서 명절마다 쓰레기를 한가득 버립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껴서 또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돌려줍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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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매번 하는 말들, 할머니가 지내온 한양 수정아파트 502호가 자꾸만 애잔합니다. 그리워질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 미리 그리워하게 됩니다.
"애로사항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해라" 김금연 여사 유행어 18번입니다. 이후에는 "뭐가 제일 애로고??" 묻고는 "먹는 게 제일 문제제?"라고 답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김치를 한가득 들고 왔습니다. 지금 냉장고에는 김치만 한가득입니다. 설날에도 김치를 가득 가져와서 먹어치우느라 고생했습니다.
연휴 끝자락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 할머니는 "내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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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그리워하면 역설적으로 더 그리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또 그리다 이제는 그리움이 멎는 것입니다. 저는 한참을 그리워해 보고 이제는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이건 거짓말) 하지만 또 어느 순간 다시 그리워합니다. 무언가의 부재는 참 슬픕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서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얼굴도 목소리도 잊히니까요. 할머니는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부재를 경험했을 까요, 그것들이 어떻게 마음에 해석되고 치유됐을까요. 할머니는 요즘 누가 가장 보고 싶을까요. 어릴 때 할머니가 우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사진 한 장 빤히 보다가 하늘을 응시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를 보고는 눈물 훔치고 울지 않은 척했습니다. 삶이 자꾸만 누구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살아있는 동안 누구를 그리워하지 않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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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하루 일찍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연휴 다음날 바로 출근하는 일이 덜컥 겁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오고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습니다. 허투루 타고 남은 시간은 항상 죄책감이라는 재를 남기는데 코로 입으로 들어와 기침을 해도 개운하지 않아 고통스럽습니다. 맑은 공기, 땀을 흘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잿더미를 뒤집어쓴 것 마냥 남산으로 가는 길에서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어폰을 꽂고 터덜 터덜 걸었습니다. 길 위에 쏟아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와 함께입니다. 가족과 연인, 친구와 말이죠. 이 지구에 70억 명이 살아간다는데 그중에 누군가는 또 나처럼 우울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 사람도 세상에 나만 우울할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 사람을 만나면 나도 우울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거리에 쏟아진 저 사람들도 어느 날은 힘든 날 오겠지요. 우울감에 젖은 솜 같은 나도 어느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웃겠지요. 누군가 웃고 누군가 우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는 날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작고 작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 가장 작은 것들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보라며 마음이 작아지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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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는 당신들 덕분에 또 씁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어디에도 연락할 곳 없다 느껴지는 날에는
언제든 답장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22년 9월 22일 늦은 오후
가든 쓰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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