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여름 남해 도보여행의 기억
20년의 여덟 번째 달, 경남 남해를 걸었다. 이후로 몇 번이고 다시 떠난 걷기 여행의 시작이었다.
도보 여행의 초심자였던 우리는 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반바지를 입었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우리들의 하체가 감당해야 했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허옇게 드러난 맨살은 뜨거운 햇볕에 피부가 벗겨지는 화상을 입거나 날카로운 들풀에 이리저리 쓸리고 베여 유혈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뿐이랴 5호 태풍 장미가 휩쓸고 지나간 길은 이리저리 무너져 내려 우리는 몇 번이고 길을 개척하며 우회해야 했고, 서울 촌놈들이 무슨 물때를 알겠는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에는 어느새 파도가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도가 치는 길을 피해 숲으로 돌아가면 늪지대처럼 넓게 퍼진 진흙에 신발이며 양말까지 모두 더럽혀졌고, 파도를 넘어 길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클라이밍 선수처럼 날카로운 바위를 직접 타고 넘어야 했다. 오션뷰 숙소를 대거 만들기 위하여 남해 해안가는 여기저기 공사 중인 곳이 많았고, 때문에 힘들게 끝까지 걸어간 길이 공사 중 라인에 막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이 번번이 발생했다.
뜨거운 태양은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의 색감에 놀라기도 잠시, 우리는 숙소까지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출발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여러 변수들에 예상 소요시간은 애당초 지나버린 뒤였다. 우리는 막힌 길을 되돌아가며 결국 사유지 돌파를 감행했다. 돌파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를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 어머님에게 발각되어 우리의 신변을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예전에 가졌던 젊음과 패기를 오롯이 이어받은 듯한 우리들에게 칠성사이다라는 성수를 제공하고 에프킬라를 뿌려주며 우리를 축복했다. 휴식의 시간은 찰나였지만, 태양이 모습을 감추기에는 충분했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 거리를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하며 걸었다. 바다 위에 배들 마저 불을 밝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육지인지 육안으로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은 눈앞에 물체를 구별하기도 힘들게 만들면서 동시에 저너머의 불빛까지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어둠으로 가득한 남해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여수 해변을 바라보며 상상했다. 저 사람들도 우리 휴대폰 불빛을 보고 있을까? 라며. 찻길로 이어지는 3km 남짓한 거리. 우리가 첫날 숙소를 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마지막 임무였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우리는 택시를 불렀다. 불명예제대를 당한 기분이었지만, 의가사제대를 할 수는 없었다. 캄캄한 밤이었고, 하루 종일 반복한 육체노동으로 다들 피로에 지쳐있었다. 하나씩 도착하는 택시에 몸을 맡기고 숙소로 가는 동안 우리는 이동 수단의 발달을 연신 찬양했고, 숙소에서 먹을 치킨과 맥주를 어떻게 준비할지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도 캄캄한 밤이 시나브로 찾아온다. 그대가 삶을 열심히 살았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부단히 걸었던 남해의 시간에서도 우리는 밤을 마주했으니 나는 어쩌면 이것이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찾아오는 하루에도 낮과 밤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낮과 같은 시간, 밤과 같은 시간이 있다. 이 필연 속에서 나는 그저 남해에서 보낸 하루를 기억하며, 삶을 걸어갈 때에도 낮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보고 캄캄한 밤에는 택시를 타야겠다 생각할 뿐이다. 그날 밤 우리를 어두운 도로 위에서 건져낸 택시처럼 삶 속에서도 캄캄한 밤에서 우리를 지켜줄 택시가 있다.
빳빳하게 마른 수세미를 처음 사용하는 순간의 쾌감 같은 자그마한 택시부터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나의 하나님과 같은 압도적인 크기의 택시까지.
그대가 삶의 어려운 순간을 마주했다면, 잠시 멈춰 택시를 불러보자.
캄캄한 밤에는 택시를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