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공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든 Oct 04. 2022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두 번째 마음, 공개(公開)

 최근에 읽은 글쓰기 관련 도서에서는 글을 쓰고 직접 읽어 보는 것을 퇴고 작업 중 해보는 것을 추천했는데요. 9월의 3번째 토요일 저의 두 번째 마음 공개를 직접 읽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소라 온라인 콘서트를 명목으로 모인 여러 사람들과 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저의 마음 공개 프로젝트에 관하여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개중에 한분이 저의 글을 칭찬하시며 한번 낭독해달라고 하셔서 겸양 떠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읽을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몇 번이나 거절했답니다. 결국 할 수 없이 동굴 같은 목소리를 가진 남자분에게 대리 낭독을 부탁드렸는데 메일의 첫 문장도 읽기 어려워하셨습니다. ㅎㅎ 


"커다란 태풍이 우리나라에 오고 있다는데,..." 


 오글 거린다는 이유로! 제가 낭독했습니다. 내가 만든 내 새끼 입으로 뱉으려 다시 보니 삐뚤빼뚤 얼마나 부끄럽던지,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들의 나열에 귀가 화끈거렸습니다. 그새 낯설어진 문장들은 다시 만나니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낭독이 끝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줬습니다. 이미지가 그려지는 묘사가 좋았다는 칭찬과 글이 따듯하여 좋다는 칭찬, 글을 보고 스스로를 대입하여 상상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라는 피드백도 있었습니다. 겸양을 떨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계속 쓰는 사람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커다란 태풍이 우리나라에 오고 있다는데, 다들 안녕하신가요? 어영부영 첫 메일을 보내고 이렇게 두 번째 연락을 드립니다. 그 사이에 추가로 등록해주신 새로운 분들도 참 반갑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합니다. 좋은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까하여, 다 읽은 날 여러분에게 편지해야지 생각했습니다.


 출근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무던하게 이별을 고하는 책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섭섭했습니다.

아니 별다른 인사도 없이 이렇게 끝이라니? '나에게 더 할 말은 없는 거니?' 헤어진 전 남친 처럼 질척거렸습니다.

나에게 말을 건네 온 책이 얼마나 오랜만인가요? 수십 권의 책을 읽어도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책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모든 책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을 텐데, 저의 귀는 미처 듣지 못한 탓이겠지요.) 이번에 읽은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무척 따뜻하면서 그리운 말들을 건넸습니다. 잘 지내니? 내가 고르고 담은 단어와 문장이 어때? 내가 느꼈을 그 순간의 감정 공감할 수 있어? 너라면 어떻게 행동할 거야? 너도 이런 경험 있어?


 질문을 받다 보면 작가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도 어려운 고민이 있는 날은 한없이 걷기를 좋아하고요, 무용한 것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해외로 떠나는 여행보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들이 좋다는 고백도 나의 고백과 같습니다. 이 작가처럼 저도 요즘 사진 찍기를 부쩍 좋아하게 됐고요... 등등


 그분의 삶이 나와 닮아 있어, 그것을 훔쳐보는 일이 나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것이 될까? 하여, 스포 방지를 위해 그의 인생을 훔쳐보는 짓은 그만해야 할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혹은 그분의 삶이 나와 닮아 있어,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회사 근처에 숨겨진 공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디 숨기기에는 공원은 커다란 공간이니, 누구도 숨기지 않은 것을 제가 이제야 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습니다.


 언제나 "존재"했던 것을 이제야 "발견"했을 뿐인데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요? 좋아하는 나무와 풀들 걷기 좋은 길들 과 바람들을 발견하고는 광대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행복은 완벽히 새로운 것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가까이에 있던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무언가가 어느 날 이 공원처럼 큰 행복이 되어 줄 테니까요. 공원으로 들어온 기분 좋은 바람이 나무의 이파리와 열매를 땅으로 떨어트립니다. 단풍나무 열매를 아시지요?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질 때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집니다. 프로펠러처럼 생겼는데, 도라에몽에서 나오는 대나무 헬리콥터를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반짝여서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더라고요? 카메라를 내리니까 그제야 바람이 불면서 이번에는 손가락 두 마디 조금 넘는 길이의 이파리 2개가 눈앞에 둥둥 그네를 타며 떨어졌습니다.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고는 카메라를 다시 들자, 바람은 불어도 이파리나 열매를 떨어트릴 만큼의 바람은 또 불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 앞머리만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 그냥 발걸음을 돌려 회사로 향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파리나 열매를 카메라에 담는 것보다 제 마음에 무언가 가득 담아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열매, 손가락 두 마디의 크기의 이파리를 땅으로 떨어트리는 작은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리로 저리로 자유롭게 쏘다니는 바람 또한 당연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느 정도는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정해두고 나의 통제 범위 속에 두고 관리하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 하나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저 무력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안에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자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가장 무용한 순간에 가장 유용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무언가 해내기 위해 몸에 힘이 가득 들어 있다면, 그 힘을 빼야 무언가 해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잔뜩 긴장한 몸으로는 평생 물 위를 자유롭게 수영할 수 없을 테니까요. 


제가 세 번째 연락을 드리기 전에 여러분 모두 안녕하시길 바라고, 

바짝 다가온 가을을 풍성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가을은 순식간에 떠나가니까요.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사진이나 글로 가을을 기록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아름다운 구도를 고민하고,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단어를 찾아보는 수고를 기꺼이 해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남겨둔 22년의 가을이 여러분의 겨울에 큰 버팀목이 될 것 같다는 개똥 예언을 남깁니다. ㅎㅎ(좋은 사진이나 글이 태어난다면 제게도 귀띔해주시고요! 메일 답장 환영~!)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맛있게 잘 정리하는 것은 저의 일이고요.

또 연락드릴게요. 


이제 조금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 


22년 9월 5일 새벽

김정원 쓰고,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미로를 둘러보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