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Dominic의 해석
<크리스천 David와의 대담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의 빈부격차란 현상을, 저는 David와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리가 틀렸다는 말은 아니에요. 같은 현상 속에, 두 논리 모두 어느 정도 담겨있을 테니까요. 고작 두 가지 논리만이 아닐 겁니다. 그 현상은 수많은 논리들이 얽히고설켜서 발현되었을 테니까요. 그러면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미국의 빈부격차와 기독교의 관계를 담담한 독백으로 풀어보겠습니다.
California의 Burbank에서 Visalia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마주친 Bakersfield의 광활한 과수원이 제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어요. 그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바다를 들여다보니, 사람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수해라는 사실에 전율했어요. 게다가 5시간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한 그 여행이 California 길이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네요. 그리고 그토록 넓은 California State 또한 United States에 속한 50개 주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나라에서 자란 제게는 헤아리기 힘듭니다.
어쩌면, 그런 미국에 한국이나 스웨덴과 같은 보편적인 복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연합국일 경우, 한국의 세금을 일본의 복지에 쓰자고 주장한다면 받아들일 한국인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그 반대의 경우도 궁금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여태까지 미국의 빈부격차를 용인하는 크리스천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미국이란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제 식견이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도 넓고, 또 그렇기에 너무도 다르다는 특징이 미국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혹한의 알래스카부터 혹서의 네바다까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들과 그들에게 전통이란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온 다채로운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공통의 국가제도가 있다면, 촘촘하게 짜인 거미줄보단 굵은 밧줄로 얼기설기 엮어낸 망에 가깝겠지요. 큰 정부보다는 작은 정부, 규제보단 자유가 이 거대한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면서도 그 다양성은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일 겁니다. 반대의 예시로 마찬가지로 거대하지만, 통일된 국가구조로 그 강력함을 자랑하는 중국이 떠오릅니다.
이런 사회에는 작은 정부라는 복지의 공백을 메울 무언가가 필요하지요. 교회 공동체는 다양성을 유지시켜 줄 만큼 작으면서도, 개인을 고독 속에 방치시키지는 않을 정도로는 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또한, 미국의 시작은 영국에서 이주한 청교도들부터 기원했으니 자신들의 지폐에 In God We Trust라고 적은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지폐에 유교 이념을 나타내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세종대왕님이 담긴 것과 마찬가지예요.
미국이란 국가의 시작은 아메리칸 원주민들과 흑인들, 그리고 다른 유색 인종에 대한 착취와 함께합니다.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에 달하는 너무도 넓은 그 땅을 크리스천 미국으로 채우는 기간에는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모순을 해소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 그 해소를 다 마치지 못한 미국에 보편적인 복지는 이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네요. 인종차별 극복이라는 험난한 언덕을 오르는 중인 사람들에게 종교 너머의 복지 국가는 마치 절대로 닿지 못할 험준한 산처럼 보일 겁니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도 슬픈 현실의 괴리에 맞닥뜨렸습니다. 이 슬픔은 신뢰를 바탕으로 구현된 복지 국가라는 스웨덴 모델과, 한국인들이 바라고 한국에 적합한 국가 모델은 다르다는 사실에서 느꼈던 슬픔의 변주곡이네요. 아마도 제가 죽기 전까지 미국의 빈부격차가 완화되는 모습을 보기에는 기독교 문화의 뿌리가 너무도 깊어 보입니다. 마치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수장인 교황과 신의 대리인인 군주들이 권력을 가졌던 시대지만, 그 현실은 이상과 참으로 거리가 멀었었지요.
그 슬픔 속에서 조그만 희망의 씨앗을 심어봅니다. 어쩌면 흑사병으로 인구가 줄어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과 같은 변화가 가능할지 몰라요. 오늘날 미국의 번영에 근간이 되는 이민자의 유입이 줄어드는 변화를 한 번 상상해 봅니다. 만약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부패, 혼돈이 해소된다면 그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오지 않아도 자국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세계적인 평화와 안정과 함께 복지 국가 미국도 구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길은 미국인,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꿈꾸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을 남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사회적인 동물만이 가진 욕구를,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싶다는 생명체라면 당연할 욕구와 조율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이네요. 그보다는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제3차 세계대전과 같은 인류의 종말을 상상하는 편이 보다 그럴듯합니다. 얼핏 비관적으로 보이는 예측들이지만 하나 다행인 점이 있어요.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이 어떤 길이든 간에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전 인류가 다 함께 나아간다는 면에서 왠지 모를 기묘한 안도감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