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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현 Nov 19. 2024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딸과 아버지의 시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나는 어리석게도 부모가 기가 세면 자식을 이긴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이 보기 좋게도 오늘 증명되었다.


자식에 대한 간섭과 잔소리가 시작되는 이유를 잘 파악해야 한다. 바로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할 대상인 자식이 있기에 간섭과 잔소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식이 없으면 간섭하고 잔소리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기에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하는 딸과 스마트 폰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화를 참지 못한 나는 부끄럽고 비겁하게도 사랑하는 딸에게 부모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집을 나가라."

"네"


그 순간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잘못했다는 대답이 나오지 차마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더 야단을 맞을 거라는 두려움이 아이가 집에 있기보다는 나가는 것을 선택하게 한 것이다.


딸은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간다며 나갔고 아내는 그런 딸을 따라 나갔다.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아서 나가보니 집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들어가자고 하고 그런 아내, 아니. 나에게 반항을 하듯 딸은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것은 나를 이기고자 함이 아니었다.


핸드폰도 없고 돈도 없는 아이가 이 밤에 집을 나간다고 하니 기가 막혀서 그러라고 말하고 나는 집으로 올라왔다. 한참을 지나도 둘은 올라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딸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나는 다시 나가서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한참 동안 나는 해야 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딸아이와 아내에게는 몹시도 지루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화의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네가 나가고 난 후 아빠가 가만히 생각을 해 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너에게는 간섭 내지는 구속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도 학창 시절 너무나 괴로워서 집을 나가려고 짐을 몇 번이나 쌌었다. 하지만 아빠의 엄마와 할머니가 말리는 바람에 차마 실행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 내가 괴로웠던 심정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생각해 봤다. 사랑도 사랑을 할 대상이 있어야 그 사랑이 이어지는 것이지 네가 집을 나가고 나면 사랑을 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니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빠가 잘못했다는. 그래서 아빠가 미안하다. 그러니 아빠를 용서해라. 네게 아빠가 하나이듯 나에게도 딸은 너 하나다. 생각해 보니 네가 없으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 언제라도 내 심장을 꺼내어 너에게 줄 수 있다.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런 사람인 너에게 내가 너무 모질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미안하다. 못난 아빠를 용서해라."


이 말 끝에 딸이 흐느껴 울었다. 자기도 미안하다며...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맞는 말이다. 사랑을 할 대상이 없으면 간섭도 구속도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럴 거면 차라리 덜 간섭하고 덜 속박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미움도 구속도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 대상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그럴 바에는 덜 구속하고 덜 간섭하고 사랑은 한 걸음 뒤에서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때늦은 후회를 해서는 안된다. 말 그대로 그때는 때가 늦다.


옛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이해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자식을 이기지 못할까? 타이르고 때로는 야단도 치며 잘 다독거리면 부모의 뜻대로 따라오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것은 나의 크나 큰 착각이었다. 부모는 결코 자식을 이길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랑에는 약자와 강자가 있다. 남녀 간에도 늘 사랑의 강자가 갑의 위치에 서고 사랑의 약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식에 비해 사랑의 약자다. 영원히 사랑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에 반해 자식은 사랑의 강자다. 어느 가정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수는 없다. 당연한 말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가장 큰 협박은 집을 나간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협박은 죽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집을 나가고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모는 내 한 목숨 바쳐서 살리고 싶은 것이 자식인데, 자식을 살리지는 못할지언정 어느 부모가 그것을 바랄까. 그런 연유로 자식은 늘 부모를 이길 수밖에 없고, 부모는 늘 질 수밖에 없다. 사랑의 칼자루를 자식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휘두르는 순간 부모는 모든 것을 놓게 된다. 당연한 세상의 진리를 어리석은 나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부모고, 또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사람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자식이지만 자식은 지금은 모른다. 본인이 부모가 되어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한 밤 중에 열이 펄펄 나는 자식을 둘러업고 응급실로 달려가고, 노래 가사에 나오듯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손발이 다 닳도록 키웠지만 그런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사는 자식은 드물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은혜는 부모가 죽고 나서야 조금은 깨달을 것이다. 조금 일찍 깨닫는 자식은 조금 일찍 철이 든 자식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자식을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가 한심했다. 자식을 이기려고 하는 부모가 참으로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은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타협하고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는 독립된 또 다른 인격체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이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사랑의 약자이기에 어쩔 수 없다. 자식으로 인해 비로소 부모가 되고, 자식으로 인해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무척이나 부끄럽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못난 아빠일 뿐이다. 만일 자식이 집을 나간 후 집을 나간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자식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보고 사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가 그것을 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일까?




어느 날 칭기즈칸이 부하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칭기즈칸은 부하들을 남겨둔 채 다시 사냥을 나갔다. 사냥감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보니 목이 타들어갔다. 그러던 중 바위를 타고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찾았고 지니고 있던 물 잔을 꺼내 물을 받았다. 물을 마시려던 찰나 칭기즈칸의 매가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물 잔을 낚아채버렸고, 애써 받은 물 잔이 쏟아졌다. 칭기즈칸은 화가 났지만 매도 목이 말랐겠거니 생각하며 화를 참았다. 다시 물 잔을 주워 물을 받았다. 다시 매가 달려들어 물 잔을 낚아채버렸다. 세 번째는 칭기즈칸이 칼을 빼들고 물 잔과 매를 번갈아 보면서 물을 받았다. 다시 물 잔에 물이 차자 매가 또 달려들었다.


"괘씸한 놈 같으니"


이번에는 칭기즈칸이 십 년 동안이나 키워왔던 아끼던 매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리고 나선 직접 바위 위로 올라가 물을 마시려고 보니 물이 흘러내리던 바위 위의 물웅덩이에 독성이 강한 독사가 죽어있었다. 만약 칭기즈칸이 그 물을 마셨더라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칭기즈칸은 탄식을 내뿜었다.


"아!~ 오늘 큰 가르침을 얻었다. 화가 났을 때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구나..."


칭기즈칸은 자신이 죽인 매를 옆구리에 끼고 막사로 돌아와 매의 형상을 본떠 금으로 입힌 다음 매의 한쪽 날개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분노로 행한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한쪽 날개에는 이렇게 새겼다.


"설령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벗은 여전히 벗이다"




설령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자식은 여전히 자식이다. 그리고 분노로 행한 일은 돌이키기 힘들다. 사실 그 잘못을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화가 났을 때 특히 말과 행동을 아껴야 한다. 그때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독이다. 말은 그 순간이 지나 평정심을 되찾은 후에 하는 편이 백번 낫다.



자식 또한 사랑의 약자인 이런 부모의 입장을 역이용하는 어리석은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를 이해하는 포용이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먹고살려고 밖에서는 을의 입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도 자식에게 사랑의 약자인 채로 살아가는 부모가 조금은 측은하다면 오늘은 시간을 내어 부모님께 한 번 말해보자.


"나 키우느라 힘들었지? 엄마 아빠 사랑해"라고...


어떤 의미로든 가족은 참으로 어렵고도 소중한 존재다.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잘못을 늘 되풀이한다. 알고만 있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모르니만 못하다. 사람은 어리석기에 똑같은 잘못을 늘 되풀이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시로 나를 돌아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익숙함에 속아서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러하다.


가족이 바로 가장 익숙한 존재이다. 곁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은 틀림이 없다.



사랑하는 딸아.

미안하고 사랑한다.


지금까지 너에게 좀 더 좋은 아빠가 되어주지 못한 걸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지금부터라도 더 잘하도록 노력하마.


언제쯤 너와의 사랑과 전쟁이 마무리될까?

내가 죽거나 아니면 네가 철이 들 때쯤이겠지?

아니면 우리 둘 다 철이 들 때쯤이면 나아지려나?

내 철은 언제나 들려나?

철드는 것보다 노망 나는 게 빠를까?


하필이면 또 사랑하는 딸이 폐렴 초기증상이라 아프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다.

차라리 네가 낫고 내가 아플 수 있다면...

얼른 낫거라. 미안하다.


어리석은 아빠가...


https://youtu.be/I5zyoZIIR5Y?si=b7Rbm0uW00kDf1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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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브런치의 모든 글은 생각이 날 때마다 내용을 조금씩 윤문(潤文)하여 완성된 글로 만들어 나갑니다. 초안 발행 이후 반복 수정하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니 시간이 지날수록 읽기가 수월하실 겁니다. 하여 초안은 '오탈자'와 '문맥'이 맞지 않는 글이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점 양해 구하겠습니다. 아울러 글은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글입니다. 독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겸허한 마음으로 활발히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분들로 인해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저자 박석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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