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미 Aug 15. 2020

우리 아빠 머리에도 봄이 오면 좋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4월, 담임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들의 얼굴조차 모른다. 출석부에 올라 와 있는 이름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온라인 개학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만남의 광장'은 e-학습터였다. 처음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6학년 담임 3월이면 매년 연례행사처럼 행해지던 아이들과의 팽팽한 '기싸움'도 없었다. '우유 마셔라', '가정통신문 회신서 오늘도 안 가져왔냐', '남아서 글쓰기 숙제마저 하고 가라', '왜 싸웠냐' 닦달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뭐든 익숙해지면 식상해지는 법, 하루 이틀 지나니 익숙함이 주는 지루함 속에서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정작 등교 개학하게 되면 이 시절이 또 사무치게 그리워질 테지만 말이다. 




'조준영', 특히 그 아이가 궁금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국어 1단원 '비유적 표현'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그날 과제는 '비유적 표현이 들어간 시를 쓰고 어울리는 배경 그림 그리기'였다. 과제 제출과 확인은 e-학습터 과제 게시판을 통해서였다. 


다음 날 출근 후 과제 게시판에 들어가 아이들의 과제를 확인했다. '다음'을 연속 클릭하며 빠르게 아이들의 글을 읽어가고 있던 중, 나의 손가락의 움직임이 순간 정지되며 준영이의 시에 시선이 멈췄다. 시의 제목은 '대머리 나무'였다.




 



엷은 미소가 지어지며 '저장' 버튼을 누르고 동학년 선생님들께 메시지와 함께 글을 보내드렸다. 


'우리 반 아이가 쓴 글인데 한번 읽어보세요.'


'ㅋㅋ아침부터 빵 터졌네요.'


'고놈 참, 물건이네요. 앞으로 눈여겨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전국 오백만 탈모인을 슬프게 하는 글입니다~.'




얼마 후 5월 15일 '스승의 날', 과제 게시판을 통해 준영이가 감사 카드를 사진 파일로 보내왔다. 아직 얼굴도 서로 못 봤지만 그래도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만든 카드를 보니 또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쓰며 그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아이, 준영이를 만날 날이 기다려졌다. 




등교 개학의 날이 왔다. 6학년은 1주일에 월요일 한번 등교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개학 후 바로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진단평가 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3과목이었다. 과목 당 60점 이하면 기초부진아에 해당된다. 기초부진아는 이전 학년의 학습이 기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로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기초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의 수강 대상이 된다. 


진단 평가 직후 오후, 아이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등교 개학 전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던 준영이의 시험지를 채점하며 내심 기대했다. 


국어 : 52점       수학 : 24점      영어 : 28점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반의 유일한 기초 부진아이자 전교에서 유일한, 세 과목 전부 기초 부진아에 해당되었다. 특히 국어 과목의 기초 부진아는 전교에서 단 한 명도 없었다. 준영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1주일에 한번 등교 수업을 진행하면서 준영이의 기초 학습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교과서의 질문에 '단답형'이 아닌 답이 요구되거나 논리적으로 써야 하는 글을 작성할 때 어려움을 느끼며 과제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3학년 과정에서 학습 완료되었어야 할 분수의 계산도 전혀 해 내지 못했다. '비율' 이 어쩌니, '백분율'이 어쩌니 준영이에게 있어 외계어들만 왔다갔다 하는 수학 시간에 준영가 멍 때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돌아가며 발표해야 할 때 발표는 전혀 하지 않으려하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나마 의사소통을 위한 간단한 질문에 대한 대답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자신감이 없다 보니 수업 시간에 늘 위축되어 있었다. 준영이의 학습 능력보다 주눅들어 있는 모습이 더 걱정스러웠다. 




작년 5학년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준영이가 기초 학습 능력이 많이 부족하죠? 참 착한 아이인데 가정에서 잘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학습 결손이 누적된 것 같아요. 준영이의 어머니도 참 좋으신 분인데 집안 사정이 있어서 말이에요."

(준영이의 집안 사정은 이 글에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나에게 묵직한 과제가 던져졌다. 남은 8개월 동안 준영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난 어떻게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써야 할까? 


짧은 시간 스쳐가겠지만 준영이의 행복에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이 아니길...


아직 어린 준영이의 삶에도 어서 봄이 오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저 오늘 조퇴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