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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Aug 13. 2020

저 오늘 조퇴해요

부장 교사의 소심한 반항

등교 개학 연기, 온라인 수업 실시 등 코로나 19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매일 덩치 큰 6학년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진땀을 빼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난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드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오늘도 아침 9시부터 국어 지도서를 뒤적거리며 '무슨 수업자료를 준비해볼까'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교실 앞문을 열고 진호가 수줍게 들어서더니 책상 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선생님, 이거 드세요."라며 후다닥 뛰어 나갔다. 빈츠, 쿠크다스, 빅파이 등 달달 구리 과자들이었다. 


진호는 옆반 학년 부장님의 아들이다. 올해  유치원을 졸업하고 1학년이 되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한창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어야 할 이 시점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대신 학교에서 엄마의 심부름을 하며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집에서 진호를 케어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부장님이 며칠 학교에 데리고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진호가 종종 교실까지 간식을 배달해줘서 아침부터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었다. 


'부장님, 매번 동학년 선생님들 간식 챙기느라 고생하시네요. 달달 구리가 엄청 당겼는데 잘 먹을게요', 


'진호가 심부름을 좋아해서 겸사겸사 보내는 거예요. 달달한 거 드시고 오늘도 파이팅하세요'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받은 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졌다. 


일곱 살, 여덟 살이었던 어린 시절 나도 종종 엄마를 따라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당직 날에는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셨다. 날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열심히 학생들의 영어 시험지를 빨간 색연필로 채점하시는 동안 난 옆에서 동화책을 읽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기도 했다. 겨울이면 주무관님께서 삶아주신 고구마를 맛있게 먹고 놀다 지쳐 엄마 옆에서 잠들기도 했다. 진호를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잠깐 떠올렸다. 




며칠이 지난 후 점심시간이었다. 부장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등사실에 복사를 맡긴 학습자료를 오전에 가지러 진호와 함께 내려가다가 교감님과 마주쳤다는 것이었다.


 "교감님께서 저를 교무실에 따로 부르셔서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 듣지 못하셨어요? 선생님처럼 학교에 자녀를 데리고 온 선생님이 계셔서 그 선생님께 앞으로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혹시 학교에 아이를 데려오는 다른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그분들께도 아이를 데리고 오지 못하도록 전달해달라고 했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금시초문이라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잠시만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 융통성을 가져달라고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된다'는 거였어요. 교감님의 입장은 이해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요." 


부장님의 별명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어도 병 조퇴 한번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신다.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갖은 정성으로 동료 교사들의 점심을 싸 오시기도 하신다. 본인 반 학생들은 자신의 자녀처럼 하나같이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챙기신다. 올해 6학년 아이들이 힘들다는 소문이 있어 아무도 6학년 부장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자발적으로 6학년 부장을 하겠다고 나서신 분이셨다. 


교감님의 눈에는 그런 부장님이 단지 근무시간에 자녀나 데려오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교사로 비쳤나 보다. 애써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시려는 부장님의 속상함, 앞으로 부장님이 출근했을 때 진호의 케어에 대한 걱정, 일말의 융통성조차 발휘하지 못하시는 교감님에 대한 실망이 한데 어우러져 모두 입맛을 잃은 채 점심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부장님께 진호를 어디에 맡기셨냐고 여쭤봤다.


"태권도 학원과 미술 학원 등 학원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서 진호가 쉴틈 없이 학원 투어를 하게 만들었어요. "


동료 교사들에게 간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해맑게 웃으며 심부름을 하던 진호가 빡빡한 일정으로 얼마나 지쳐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저도 학교 일보다 저의 건강을 먼저 챙기려고요. 진호를 학교에 데리고 다닌 것에 대해 책잡힐까 봐 몸이 아파도 일부러 조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실히 학교 일을 했었는데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정형외과에 치료받으러 다닐 거예요." 


물론 건강을 위해서 병원 치료를 다니는 것이 당연한 거지만 그동안 부장님은 불필요한 책임감으로 인해 그 당연한 일을 미뤄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저 오늘 조퇴해요~"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았을 때 비뚤어지고 반항하고 싶어 지는 법인데 법 없이도 살 이 시대의 모범 교사 부장님에게는 '조퇴'가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비뚤어진 행동이었던 것이리라.




종일 마스크 착용과 방역 등으로 학교에서의 모두가 지쳐갈 때 쯤,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여름방학 연수를 위해 여름방학 계획서 인쇄물이 모든 교사들에게 배부되었다. 매번 방학 직전 연수 때마다 돌려 쓰기 하는 늘 같은 내용의 연수자료였다. 코로나 19로 인해 직접 대면이 어려운 상황이라 교무부장님의 진행하에 화상 연수가 시작되었다. 연수 중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문구가 있었다. 


'방학 때 아동 동반 금지, 특정 아동 호출 금지' 


인쇄물의 그 한 줄 문구가 모든 교사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교사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순간이었다. 


원칙보다는 사람들 간의 정과 신뢰가 더 가치로웠던 그 옛날 나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배경 사진 출처 : https://cafe.naver.com/cadroom/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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