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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Aug 12. 2020

우리 선생님, 사이코 아니에요!

욕이 허용될 수 있는 거리

"선생님 같아 보이진 않아요" 그 말을 들으면 좋다.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에서 예외이고 싶은 건 왜일까? 나의 직업을 사랑하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연구부장님은 날 '미친 X', '이상한 X', '쓰레기', '사이코', '돌 I' 등으로 부른다. 하나같이 정상적인 사람에게 붙이는 단어는 아니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서나 거리감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 있을 경우에는 당연히 호칭은 '정 선생님'이다. '미친 X'와 '사이코'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연구부장님은 당연히 내게 고소감이다. 


하지만 연구부장님께서 날 그렇게 부르시는 건 그만큼 서로 격 없이 친하다는 것이고 내가 틀에 박힌 초등학교 교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틀에 박힌 초등학교 교사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초등학교 교사'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테다.


직장 동료 중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바른말을 사용해서 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교사 집단에서 욕이 친밀함으로 허용될 수 있는 거리의 관계, 그래서 난 부장님이 편하다.   




6학년 3반 우리 교실에는 미니 탁구대가 있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가끔 점심을 드신 후 점심시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우리 반에서 아이들과 함께 탁구를 치기 위해 오신다. 자주 보는 탓에 아이들은 다른 반 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탁구 치며 스스럼없이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중 '위대한 클라쓰'를 자랑하는 3인방은 선생님들과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낸다. 댄스면 댄스, 공부면 공부 못하는 게 없는 3인방이 위대한 클라쓰인 이유는 급식을 엄청나게 때려 먹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을 닮기 마련인데...^^;;) 


3인방은 다른 아이들이 전부 급식판을 정리하고 운동장으로 나가 뛰어놀 때 다른 반의 남은 밥까지 싹싹 긁어와 남은 반찬들과 함께 한통에 붓고 야무지게 위생장갑을 끼고 비빔밥을 해 먹는 신공을 종종 발휘한다. 


점심시간에 비빔밥을 때려먹는 3인방을 본 4반 선생님은 그 이후부터 그들을 '소새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저 잘 먹는 모습이 소가 여물 먹는 것처럼 보여서 귀여운 애칭처럼 불렀던 것이다. 2~3번 '소새끼'로 불렸을 때는 3인방도 웃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여느 보통날의 점심시간과 다름없이 마지막까지 알차게 점심을 먹고 있는 3인방을 본 4반 선생님이 "누렁소, 흰소들이 여물을 싹쓸이하네"라고 한마디 하고 가셨다. 그때 갑자기 3인방 중의 한 명이자 전교회장인 영은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오더니 "선생님, 자꾸 4반 선생님이 저한테 소새끼라며 놀려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민원 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동료 교사 하나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4반 선생님이 영은이랑 친하고 편하니까 밥 잘 먹는 모습을 보고 기특해서 농담한 거잖니. 너도 4반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머리숱이 없어서 우리 선생님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여요'라며 장난치잖아. 영은이가 선생님이랑 친하면서 그 정도 농담도 못 받아들이면 4반 선생님한테 너에게 사과하라고 말씀드리고 앞으로 우리 반에 오시지 말라고 이야기할까?"라고 이야기했더니 영은이가 울음을 그치며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4반 선생님한테 아무 말씀도 하시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난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능청스럽게 "영은아, 엄마한테는 이르지 마. 선생님 민원 들어와~." 영은이도 그제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다음 날 아침 독서시간에 연구부장님께서 우리 반에 잠깐 오셨다. 우리 반 아이들 과학 교과를 가르치고 있었던 터라 연구부장님과 우리 반 아이들도 친밀한 상태였다. 난 아침 출근길에 사 온 식빵에 달달한 딸기잼을 발라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주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셨던 연구부장님께서 "너네 모르지? 너네 선생님 사이코야"라고 한마디 던지셨다. 영은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은 입 속에 가득한 빵 조각을 튀기면서 분개하여 말했다. "우리 선생님 사이코 아니에요!" 담임선생님이라고 감싸고도는 아이들이 내 자식인 것 마냥 흐뭇했지만 난 한마디 던졌다. "아니야, 선생님 사이코 맞아" 


연구부장님께서 나가시고 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과학 선생님이랑 선생님이 친해서 장난치신 거야. 친하다고 해서 함부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과학 선생님께서 어떤 의미로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는지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단다"



그 날 점심시간, 우리 반에 탁구 치러 온 4반 선생님이 점심밥을 다 먹은 영은이에게 "어이 소새끼, 4반 교실 가서 선생님 책상 위에 있는 파란 서류 파일 좀 가져오렴"이라고 하자 바로 영은이가 '솔'톤의 목소리로 "네, 선생님~"하며 4반 교실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영은이의 뒤통수도 밝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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