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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Aug 11. 2020

선생님도 사람이잖니

선생님도 아프다

아침 출근  때면 늘 난관을 거친다. 학교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사실 오르막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완만한 경사다. 짧고 완만한 그 경사를 오르면서 거친 숨을 내쉬기는 기본이고 몇 번을 주저앉아 쉬었다 가기도 한다. 나를 추월해 가는 동료 교사들에게는 "제게 지병이 있어서요"라며 농담 삼아 던진다.


특히 여자에게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 날이 되면 병든 닭처럼 맥을 못 추고 어떻게든 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 누워있으려고 한다. 건강검진에서 빈혈 수치 6으로 나왔었지만 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바람에 나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끔 어지럽고 숨이 차는 것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내고 있었다.  




6학년 담임교사라 대개 6교시 후에는 아이들을 보내고 넓은 교실을 혼자 차지한다. 하지만 가끔 교실에서 남아 놀고 가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 교실에 미니 탁구대가 있어 탁구 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탁구를 좋아하는 1인으로 가끔 아이들과 과자 내기 탁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날'이 되면 다르다. 아이들이 남아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요가매트를 바닥에 깔고 눕는다. 남아서 노는 아이들은 그저 내가 피곤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선생님, 어제 엄마에게 '선생님이 가끔 교실에서 낮잠 주무신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예린이가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허걱 했다.


'나 이제 교육청 민원 게시판에 올라가는 건가'


 '그냥 병 조퇴하고 집에 가서 마음 편히 푹 쉴걸 그랬나'


찰나의 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예린이가 뒤이어 얘기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왜, 선생님도 사람이잖니'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빵 터지며 안심이 됐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일요일 저녁부터 빈혈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토했었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도무지 회복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렵사리 출근해서 근근이 버텼다. 도서관 이동 수업이 있었는데 도저히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해서 아이들 손에 이끌려 겨우 도서관과 교실을 왔다 갔다 했다.


퇴근할 때도 세 걸음 후 앉았다 쉬는 것을 반복하는 바람에 택시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퇴근 시간의 갑절이 걸렸다. 동료 교사들이 걱정할까 봐 일부터 다들 퇴근하고 난 후인 5시쯤 퇴근했다. 퇴근하는 내내 호흡이 가빠 '사람이 이래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병원을 찾지 않은 나는 무슨 강심장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화요일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기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고 화요일 아침, 학교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도저히 4층 교실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동료 교사인 친구에게 SOS를 요청했고 먼저 출근해 있던 그 친구가 교문까지 내려왔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119에 전화를 걸어 응급차를 호출했다.


난 바로 학교 교문에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빈혈 검진 결과 수치 '3'을 기록하고 바로 수혈받기 위해 입원 수속을 했다. 의사가 정상 혈액 수치는 '12'이상으로 쓰러지지 않고 병원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일 정도라고 하셨다. 그리고 난 1주일을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1주일을 입원했기 때문이다.


1주일 입원 치료를 받고 철분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은 결과 퇴원할 당시 혈액 수치 '6'으로 회복되었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평생을 빈혈을 친구 삼아 지냈을 것이다. '건강하세요'라는 말은 으레 형식적으로 마지막에 큰 의미 없이 주고받는 말이려거니 생각했을 텐데. 그 말이 가진 중요성을 비싼 대가를 치르며 깨달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지런 떨며 건강을 세심히 챙기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단 관리를 병행하며 정상 혈액 수치로 돌아온 나는 이제 가파른 오르막길도 뛰어 올라갈 정도다. 계단을 오를 때 항상 난관을 부여잡고 느릿느릿 올라갔는데 두 칸씩 막 뛰어 올라가는 나를 보며 동료 교사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스포츠 강사 못지 않게 체육 수업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체육 수업을 시작하기 전, 준비운동으로 아이들과 운동장을 2~3바퀴 함께 뛰는 것은 기본이다. 숨을 헉헉거리며 뒤쳐지는 아이들에게는 "어째 선생님보다 체력이 약하냐?"며 핀잔을 던지는 여유까지 부리며 말이다. 뭐든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운동장 뛸 때 같이 뛰는 선생님은 초등학교 6년 만에 처음이에요."라며 운동장 뛰는 것도 하나의 놀이인 마냥 즐거워한다.


항상 꿈꿔왔던 아이들과 함께 축구하는 나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10월 2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후문으로 출근하고 있는 나를 2명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오신 거예요?"


" 우리 운동장 한 바퀴만 같이 걷고 교실로 들어가요."


양 옆에서 팔짱을 끼는 녀석들. 뭔가 낌새가 이상했지만 시간도 있겠다,  같이 운동장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향했다. 4층 문이 열리는 순간, 엘리베이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나에게 고깔모자를 씌우며 교실로 끌고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20명의 아이들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칠판은 아이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와 편지로 꾸며져 있었고 초코파이들로 쌓은 케이크와 간식들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두둥~ 대망의 생일선물을 뜯어보니 민트색 강아지 인형 베개였다. 예린이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앞으로는 이 베개 베고 편히 주무셔요.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 행정실에 근무하시는데 선생님 생일을 어떻게 해서 알아내시고 알려주셨어요."


예린이 어머니께서 나의 개인 정보를 어떻게 알아내셨는지는 전혀 궁금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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