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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느 Feb 14. 2024

[일기 읽는 시간] 세상이 나아지길 바라는 시간

2020년 8월 18일의 일기

내가 마지막으로 손 일기를 쓴 것은 2015년이었다. 2011년에 취업을 하고 나서 쓴 일기들은 일상을 그냥 쭉 적어 내린 글들이 대부분이고, 그조차 2015년 이후에는 업무용 수첩에 가끔 끄적인 게 전부다. 평일엔 일에 파묻혀 사느라, 주말엔 보상심리 때문인지 사교, 문화생활에 몰두하느라 가만히 앉아있을 새도 없었다.


 2017년, 아이를 낳고 나서는 다른 의미로 앉아 있을 새가 없었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책임감이 과도했다. 서점에서 책 좀 보고 올 게, 친구들 좀 만나고 올 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개인적인 시간을 우선순위에 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시간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쓰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는 휴대폰에 짧은 메모를 남기곤 했는데, 2020년 여름에 남겼던 메모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아이가 네 살이 된 해이다).



삶에는 즐거움도, 슬픔도 있는 것이니 모두 겪어보는 것당연하다는 생각이고, 나이가 좀 더 들고나니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일이 대부분이라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재앙과 같은 질병이 돌 때는 무력감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간(지금도) 우리가 마구잡이로 쓰거나 망치고 있는 자연이 대갚음을 주는 것인가 싶기도 해서 왠지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는 그 해와 다음 해를 잘 버티고, 아이가 6살이 된 2022년 3월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다.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9일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먼저 확진이 되었고, 아이는 이틀 후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구토와 함께 증상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상하게 아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길을 배웅했고, 배가 고파서 일찍 깬 줄 알았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점심때쯤 친정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가셨고, 아이는 병원에서 두 번이나 더 구토를 했다. 그리고 신속항원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


 회사에서 소식을 듣고 짐을 싸서 집으로 갔다. 격리를 대비해서 장을 좀 보고 들어가자, 마스크를 쓴 친정부모님이 거실에 앉아계셨고, 아이는 지쳐서 침대에 늘어져있었다. 아이의 힘든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이 나고 죄책감 들었다. 아이가 엄마 없이 느꼈어야 할 두려움과 서러움, 그 감정을 느껴야 했던 아이의 엄마가 나라는 사실이 서러웠다.  


 다행히 다음 날이 바로 주말이어서 일을 해야 할 걱정은 없었고, 아이는 잘 놀았다. 중간중간 열을 재서 해열제를 먹이고, 밤이나 새벽에 열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심적인 두려움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주말이 지나고부터는  내가 재택근무를 해야 했기에, 아이는 텔레비전도 많이 보고(92년도 영화인 알라딘을 2번이나 보았다), 초콜릿과 사탕도 실컷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를 겪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결국 백신도, 치료제도 개발이 되고 바이러스도 꽤 약해져 격리의무조차 사라졌지만 어떤 이유로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는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고, 알아낸다 한들 다음에 나올 바이러스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법이 없으니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운이 좋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큰 후유증 없이 지나갔고, 건강과 생활에 큰 상흔을 남기지 않고 지나갔지만, 가끔은 두려운 마음이 든다. 평소에도 건강을 잘 챙기고 늘 조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속 편하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해줄 수가 없다. 부모가 되니 아이에게 영웅이자 해결사가 되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슬프다. 


그날 남겼던 메모처럼 '나와 너'가 잘 되는 것보다 '세상'이 나아지길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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