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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느 Feb 15. 2024

[일기 읽는 시간] 미용실 공부방

2020년 7월 19일의 일기

내 시대의 연예인이 표지를 장식했다고 감격했던 그 월간지


 아빠는 일찍부터 흰머리가 많았다, 오빠도 그랬다. 그리고 서른넷,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나도 흰머리가 유독 많아졌다. 유전이구나 싶어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흰머리를 족집게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푸석푸석해진 얼굴이나 살찐 허벅지보다도, 이마 옆 쪽에 허옇게 새어 있는 새치들을 볼 때면 초라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두어 달에 한 번씩 꼭 미용실에 갔다. 일도 바쁘고 아이와의 시간도 부족했지만, 최소한 이것만큼은 나에게 해줘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 염색이었다.

그날의 메모(일기)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들도 반은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새로 데뷔한 가수들도 구별하기가 어려워졌다. 가끔 아이가 잘 때 TV 소리를 0으로 해놓고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도 있었지만, 자막에 의존해야 하니 익숙한 프로그램만 돌려 보는 식이었다.

 

 그래서 미용실에서는 꼭 최근에 나온 잡지를 봤다. 화장품이며 옷이며 명품에도 관심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해서 한 권을 받으면 훅훅 넘겨버리고 치워 두곤 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새치 염색을 하러 간 미용실에서는 화장품 추천이며 요새 유행하는 패션, 배우나 가수들의 인터뷰도 열심히 읽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내가 바빠서 못 봤어,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사람이나 용어 자체를 모른다는 것은 좀 서글펐다. 그래서 공부하 듯 잡지를 읽고, 문제 풀 듯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해 승률(점수)을 따졌다.

 

지금은 모르는 게 너-어무 많아서 배울 수도 없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는 더 이상 월간지를 비치해두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들 휴대폰을 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또 요새의 트렌드인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내가 최근 소식을 ‘배울’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두 달에 한번 약 1시간 30분)은 더 이상 없다.  


 새로운 용어나 흐름은 매 해 초에 나오는 2024 트렌트 코리아 요약본 같은 것으로 파악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상식 정도만 익히고, 나머지는 나의 이미지로 커버한다. ‘나는 바쁜 아줌마라서 그런 건 잘 몰라, 그래도 무식하진 않아.’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그렇게 한다고 해도, 누구도 워킹맘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저 메모를 보면 좀 귀엽다. 서른일곱에  흰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면서, 모르는 말이 나오면 검색도 해보고, 표지에 내가 아는 연예인이 있으면 반가워하기도 하는 내가 가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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