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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04. 2023

오늘도 별일 없었다

별일 없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이다

 ‘오늘도 별일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감탄을 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저자의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혹시 있었다면 충분히 성공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열자마자 마음의 끌림이 시작되어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으니까. 림태주 작가의 「관계의 물리학」 이다.      


별일 없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오늘 내 일상이 안전했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몹쓸 생각을 의식하거나 입밖에 내뱉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타인의 불행을 마주하면서 안타까워 눈물을 훔치지만, 한편으로 남몰래 나와 내 가족이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는 걸. 이런 두 마음의 공존 때문에 나는 가끔 속이 쓰리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 쏟아지는 빗소리가 좋지만 요즘 같은 날에는 어쩐지 반갑지가 않다. 비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생사가 오고 가는 찰나를 나는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예고 없이 찾아 온 이별 앞에 서 본 적이 없어서, 도무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 부여잡고 별일 없는 나의 오늘을 살아낼 뿐이다.     


생과 사, 그리고 화와 복.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주권이 없다. 사시사철 근면한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 나는 대자연의 흐름 앞에 한없이 작은 나를 대면한다. 나이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 결혼의 여부도 자연 앞에서는 앞세울 게 없다. 그저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삶을 살아내고 싶다. 조금 더 성실히,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사랑하며, 그렇게 사는 것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주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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