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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Sep 18. 2023

고독, 혼자 있는 즐거움

숨을 곳이 필요했다

안개에 가려진 산을 보았다. 뿌연 안개는 사시사철 민낯을 드러내야 했던 산에게 가끔 허락된 쉼이다. 산은 자신을 가릴 방법이 없다. 주어진 모든 시간과 삶 속에서 정직하고 진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도 가끔은 숨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다.      


숨을 곳이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쉴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내 인생을 문득 대면할 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꽤 고독하고 고된 씨름을 한다. 때론 격동하는 파도 같은 감정을 삼키느라 가슴을 치기도 하고, 가끔은 바다 깊은 곳을 향해 한없이 내려앉아 심해의 깊은 어둠 속에 자리 잡을 때도 있다.     


방 한 칸 덩그러니 있는 외딴 마을에서 낯선 생활을 한다.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여기에 들어와 있다. 그간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았나 보다. 사실 일상의 큰 변화는 없다. 달라진 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나를 내려놓기에 거리낌이 없는 공간이다. 한동안 멀리 밀어냈던 나 자신과 친해질 시간이다.   

  

이 동네는 아침부터 밤까지 떠드는 사람이 없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아침 녘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뿐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말 노래를 하는 것 같다. 가끔 택배 기사의 트럭 소리도 들린다. 한없이 고요하게, 지극히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마을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울 수 있다. 혼자 있을 때나, 함께 살 때나 외로운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결혼의 유무나 가족 구성원의 숫자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고독은 사람의 숙명일까.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고독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보다 견딜 만하다. 그래서 즐거움이라고 말했나 보다. 고독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함께 할 때 스며드는 외로움 따위는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단련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적막이 둘러싼 여기 이곳, 포승 마을에서. 이 시간이 진정 괜찮아질 때, 평생 혼자 살아도 괜찮겠다 싶을 때, 그때 함께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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