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하루 걸음 거리가 얼마인지 따지지 않았다. 뚠뚠하지만 칼로리 소비가 얼마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걷은 운동을 극대화 할까 라는 물음도 없었다. 걸을 뿐이었다. 내일은 좀 더 근사한 일몰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걸으면서 20여년을 갖혀 있었던 올드보이처럼 내가 잘 못했던 순간 순간이 떠올랐다. 장면 하나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한 걸음 걸음이 반성에 시간이고 한 걸음 한걸음이 성찰에 시간이었다.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백수긴 해도 나도 사람이니깐. 나는 어린왕자가 아닌니깐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위 하며 걷고 걸었다. 그렇다고 절대 걸으면서 자위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백수 지만 뭔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지. 돈이 있어야 겠지만. 백수라 돈이 없다. 그럼 일을 해라 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재 글은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라는 걸 알려 준다.
품격이었다. 백수도 품격이 있어야 겠다라고 생각했다. 글쓰면 품격이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자. 책을 보자. 모든 열망이 글로 향했다. 내 걸음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내 안에 뭔가 뜨거운 것이 있는데. 코로나로 닫는다는 안내문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더구나 언제 열지 모른다는 미정이. 미정이. 내가 걷는 동선에 도서관이 추가 되었고, 나는 한 동안 미정이를 보고 삼락공원으로 향했다. 며칠이 지나도 미정이는 변함 없이 흰색 바탕에 명조체로 그대도 있었다.
대출은 댄다는 걸 알게 될건 내가 도서관으로 갈 때, 사람들이 책을 들고 가는 걸 보고 나서였다. 정확하게는 전화로 문의한 후 였다. 온라인으로 대출을 신청하고 나서 도서관 입구로 올라가는 길에 대출은 된다는 플랜카드가 보였다. 사실 조금 높게 걸려 있었다. 진짜다. 미정이가 있는 A4용지 옆에는 대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혀 있는 안내문이 있었다. 어제까진 분명 코로나 예방수칙 같은게 적혀 있었을거 같다는...
사실 미정이 옆에는 코로나 예방수칙등이 있었고 그 안내문은 쪼~금 더 옆에 있었다. 내 열망도 미정이 앞에 소용이 없었다는게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