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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스 May 17. 2022

품격 있는 백수 #2

진작에 결심이 아닌 각오를 했어야 했다.

<일몰과 낙조의 차이는 현상이다>


그때 처음 본 의사의 처방은 내게 통했다. 약을 먹기

도 전인데도 말이다. 아니 약을 먹게 하려고

레지던트가 뭐신가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프린트로 인쇄된 종이 쪼가리 받은 약보다 내게  던 지 몇 마디가 내겐 통했다.


그 의사는 까만 봉지 안에 갇혀있었던 백수를 꺼냈

다. 약사도 한몫했다. 3개월 치라고 했다. 식후 30분이라고 했다. 알뜰히 챙겨 먹어라고 했다.


백수의 존재는 술을 먹는 게 일이었는데 그래서

늦게 일어나는 게 일어 었는데 약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한술 떴다. 식후 30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12시, 1시라 하는 점심

시간은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2년간 백수로 지내며  

더욱더 그랬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아침을 먹고 약을 먹고 삼락공원으로 갔다. 걸었다. 집으로 와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다시 걸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걸었다. 의사 내린 운동이라는 처방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다. 약사에 말도 따랐다.


하루에 마무리는 일몰을 보는 것이었다. 낙조를 따

라 걷는 것이었다. 그 넓은 공원 안에 뭐가 있을까

라는 물음도 없었다. 같은 동선을 따라 걸었다.

시간을 단축시 키 거거나 걷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걸었다.  걸었다. 백수니깐 말이다.

백수 지만 할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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