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글자를 늦게 배우고, 비로소 책까지 쓰신 할머니 두 분이 나오셨다.
주미자 할머니는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절에서 일만 하셨기 때문에 글자를 배우지 못했다고 하셨다.
한글을 몰라서 곤란한 때는 언제였냐고 묻는 질문에 "버스에 붙어있는 행선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때"라고 대답하셨다. 앞에 쓰여있는 거 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차마 글자를 모른다고 대답할 수 없어 마냥 기다리기도 했다고 하셨다.
나는 이 순간 아차 싶었다.
승강장을 순회하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행선지가 커다랗게 적힌 안내판 바로 앞에서 여기가 OO역 방향 맞냐고 자주 물어보시는데, 나는 눈이 잘 안보이시거나 아는 방향이어도 돌다리 두들겨 보자는 심정으로 물어보시는 줄 알았다. 내가 만나는 100명 중 1명은 글자를 읽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으며 대답해드렸지만, 속으로는 알면서 물어보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합리적 의심이기도 한 것이 사내 게시판에 길 찾는 방법 알려드렸더니 "아니야. 이 방법보다는 요렇게 가는 게 더 빨라~"라고 말한 승객의 일화가 올라오기도 했다.
사실 환승 방법이나 역세권 위치를 안내하는 업무는 우리의 업무 중 하나지만, 때론 괴롭기도 하다.
예전 근무지는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안내판을 붙여놔도 하루에 100명 넘게 물어볼 때도 있어서 백화점 직원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백화점 안내 및 홍보를 대신해주는 것 같아 괜히 괘씸하기도 하고..ㅎㅎ
유쾌한 대화도 있었다.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딸이 서울에서 처음 자취를 하는데 직장이 혜화여서 여기에 방을 구하려고 해요. 출근길이 많이 혼잡한가요?"라고 물어보셨다.
이쪽은 주거지라 너무 혼잡해서 열차에 못 타는 경우도 있으니, 차라리 더 도심으로 가거나 아래쪽으로 방을 구해서 상선 방향으로 열차를 타면 출근길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대답해드렸다.
딸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묻어났던 대화라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여기 취업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은 생각보다 많았고, 학창시절 몇 등이었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다..ㅎㅎ
유퀴즈는 정말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이다. 보면서 많이 울고 웃는다.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겠다고 반성하며, 다음에는 속마음까지 흔쾌히 안내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