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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Mar 02. 2021

왕비에게 선물한 도시 오비두스

단돈 1 유로의 달콤한 유혹 진자



리스본 마지막 날, 오비두스로 짧은 근교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포르투갈의 겨울은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외려 계속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덩달아 .


호시우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캄포 그란데 역에서 내렸다. 반대편 출구로 나왔는지 좀 헷갈렸지만 금세 버스 정류소를 찾을 수 있다. 리스본에서 오비두스로 가는 버스는 거의 매 시간 있고 2020년 2월, 요금은 편도 8 유로(약 만원)였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수 있어서 그리 멀지도 않고 반나절 코스로 적당한 근교 여행지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30분 넘게 시간이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행설렘과 여유를 즐기기로 다. 따뜻한 햇살, 진한 커피 한 잔이 여행의 행복을 더해준다.

 



오비두스(Obidos)는 라틴어로 성채라는 뜻을 진 오비둠 (oppidum)에서 유래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 전체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어인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벽을 세웠던 초대 알폰소 1세의 아들, 알폰소 2세가 이 아름다운 마을을 왕비에게 선물하였고 그 이후로  포르투갈의 여러 왕들이 종종 결혼 기념으로 왕비에게 선물하면 여왕의 도시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해마다 많은 축제들이 개최되고 마을 전체에 꽃도 가득 피어 있어 꽃의 도시, 축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오비두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문을 해야 한다. 이름처럼 마을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투박한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하얀 벽이 인상적인 동화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겨우 3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조약돌이 깔린 돌바닥과 붉은 지붕, 하얀 담장 위로 나무와 꽃들이 넘실거리는 마을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린.


오비두스로 들어가는 성문


성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난 아랫길에는 레스토랑과 펍 등이 있었고 왼쪽은 주로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 메인 거리였다. 하얗고 예쁜 집들과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 때문일까. 바다도 없는데 왠지 2년 전 여행했던 이탈리아의 포지타노가 떠오른다. 딸도 그래서였는지 피자가 먹고 싶단다. 오른쪽 입구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피자와 맥주로 간단히 점심부터 먹고 여행을 이어가기로 다.



봄처럼 따뜻한 날씨에 가게 밖 테이블에 앉아도 춥기는커녕 오히려 시원한 생맥주가 반갑. 이탈리아의 추억을 부르는 마르게리따 피자의 고소한 맛과 사그레스 생맥주의 쌉쌀한 맛이 제법 잘 어울렸다. 지나가던 단체 여행객들이 우리를 보고는 가게로 들어오는 걸 보니 꽤 맛있어 보이나 보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마을 구경에 나섰다. 돌길을 따라 좁은 골목이 이어져 있고 그리 높지 않은 붉은 지붕 아래 하얀 벽에는 나쁜 운을 막기 위해 칠해 놓은 파란색이나 노란색 선과 문양을 쉽게 볼 수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전시된 예쁜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담장 너머 정원이나 창문, 그리고 골목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어 공기 중에도 향기가 흘러 다니는 것 같다.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꽃향기보다 진한 체리 향이 넘쳐났다. 오비두스 지방에서 재배된 잘 익은 체리로 담은 전통주 진자(ginja)의 향기다.


오비두스 거리


리스본 여행자들이 많이들 간다신트라 호까  아닌 오비두스로 오기로 한 이유도 진자를 마셔보기 위해서다. 메인 거리 양쪽으로 진자를 파는 가게가 엄청 많이 있었다. 몇 군데인지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열 군데는 는 것 같다. 작은 바처럼 만들어진 부스에서 마실 수 있는데 가격은 한 잔에 1 유로(약 1,300원)이다.  잔 마셔보고 맛있으면 선물용으로 구입해 가기 때문인지 대부분 기념품 가게와 겸업하는 곳이 많았다.


진자를 파는 가게


입구 쪽 가게에서 1 유로를 지불하고 한 잔을 주문해 보았다. 특이하게도 진자는 초콜릿으로 만든 잔에 부어준다. 초콜릿이 녹기 전에  번에 털어 넣어 마시고 초콜릿 잔은 안주처럼 같이 먹으면 된다. 향부터 먼저 맡아보았다. 그윽하고 진한 체리 향이 난다. 마시기도 전에 벌써 향기에 취할 것 같다. 건배를 하고는 시키는 대로 툭 털어마시니 입안에 온통 달콤한 맛과 향이 가득하다. 더 달고 쌉쌀한 초콜릿 맛이 뒤를 이어 느껴졌다. 단 음식을 싫어하는 나에게도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리 나쁘지 않은 단 맛이다. 맛과 향이 향긋한 진자는 별로 독하게 느껴지않아서 쉽게 마실 수 있을  같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도수가 20도가 넘는 소주 정도의 독한 술이라 맛있다고 마음껏 마시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술에 취해 헤롱 거리며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가게로 가서 또 한 잔 마셔보았다. 가게마다 자신들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만드는지 진자의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름의 맛이 있었다. 실제로 체리를 어서 부어주는 곳도 있다. 단돈 1 유로에 한 잔의 낮술을 즐길 수 있는 경험이 꽤 재미가 있다. 초콜릿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곳은 천국 같은 거리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 가게에서 마셔본 진자가 맛이 제일 괜찮은 듯하여 선물용으로 한 병을 구입했다. 집에 가져가 남편과 같이 맛볼 생각에 신이 났다. 더 마셔볼까 했지만 나에겐 석 잔 정도가 단 맛의 마지노선인 것 같다. 입 안이 너무 달고 더 마시다간 리스본으로 돌아가기도 힘들 것 같아 그만 마시기로 한다.



진자의 거리를 지나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구경하기로 했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마을이 참 예쁘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사진도 찍으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워낙 작은 마을이라 어느새 마을의 끝까지 가게 된다. 성수기에는 수많은 여행객으로 북적인다는데 우리가 간 2월 말은 비수기라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오비두스 산타마리아 성당


 마을의 제일 끝부분에 오비두스 산타마리아 성당이 있다. 다른 도시의 성당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고 아담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온다. 여름철 성당 앞 작은 광장에서는 꽃 축제나 초콜릿 축제 등 많은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지금보다 더 화려하게 만발한 꽃들과 활기찬 사람들이 여행객을 반겨주겠지. 축제를 즐기고 싶다면 햇살 빛나는 여름날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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