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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Apr 23. 2021

미나리에는 대패삼겹살이 딱이지

청도 한재 미나리



십여 전에 한창 청도 한재 미나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1박 2일이라는 예능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고 봄이 오기 전 1월이나 2월이 되면 한재 미나리를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청도 한재로 향했다. 데쳐서 나물로 무쳐먹던지 복국이나 대구탕 등 시원한 맑은 탕에 넣어먹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미나리를 생으로 삼겹살과 함께 먹는 새로운 방식에 다들 좋아라 했다.



당시 우리도 매년 2월이면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미나리 파티를 하곤 했다. 몇몇은 회사에 반차를 내고 청도 한재직접 가서 한 단(1kg)에 9,000원 정도 하는 미나리를 열 단 정도 사 왔고 우리는 술과 고기를 준비해 놓았다. 삼겹살과 항정살 등 고기를 구워 미나리에 싸서 열 명이 넘는 인원들이 실컷 먹고 마시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풍경이지만 평소 모이기 힘든 친구들이 시간을 내어 왁자지껄 어울려 놀며 즐거웠던 추억이다. 해마다 이어질 것 같던 모임도 어느새 각자 사정으로 흐지부지 되었고 이제는 술자리에서 가끔 '미나리 모임'에 대해 얘기할 뿐이다.  




'영화 미나리'화제의 중심이라 미나리라는 말이 많이 들려서일까. 남편과 한 잔 하는 중에 문득 예전 청도 한재 미나리 모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아직도 한재 미나리가 그때처럼 맛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배로 주문해서 먹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검색을 해보니 요즘도 많이들 즐기는지 택배가 많이 밀린다고 한다. 뭐... 언젠가는 오겠지. 일단 주문해놓고 미나리가 배송되는 날, 다시 소규모의 미나리 모임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미나리가 도착했다.

5인 이상 모일 수는 없으니까 인원은 4명.

남편과 나, 그리고 여행사를 운영하는 선배와 우리 큰 딸이 오늘의 멤버이다. 배송된 박스를 열고 미나리를 꺼내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냈. 미나리는 산지에서 지하수로 여러 번 세척되어 오기 때문에 간단히 헹궈서 물기를 뺀 다음 바로 먹으면 된다. 갓 씻은 미나리하나 씹어보니 아삭한 식감과 신선한 향기에 입 안에서 봄이 느껴지 것 같다.



항정살이나 생삼겹을 구워서 같이 먹어도 맛있지만 술안주로 먹기에는 금방 익혀 먹을 수 있는 대패삼겹살이  안성맞춤이다. 국내산 대패삼겹살 한 봉지와 치즈를 얹은 양송이버섯을 준비하고 불판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얇게 돌돌 말려있는 대패삼겹살이 익어서 펴지면 미나리를 똬리처럼 말아서 그 위에 고기와 땡초를 특제 막장에 찍어서 얹는다.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더 맛이 풍부해진다. 소주 한 잔을 건배하고 준비된 미나리 쌈을 한 입 가득하게 넣어 씹어 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돼지고기의 육즙에 부드럽고 아삭한 미나리의 향과 식감이 더해져 말도 못 하게 맛있었다. 돼지기름에 구워진 양송이버섯과 그 위에 올려진 치즈가 풍미를 더해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들 정신없이 한참을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중했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화는 더할 수 없이 좋았고 봄날 술자리에 이보다 더 멋진 안주가 있을까 싶다. 술을 먹기 위해 미나리 쌈을 싸는지 미나리를 먹기 위해 소주잔을 드는지 알 수도 없었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그나마 해독 효과가 좋은 미나리와 함께 먹으니 술을 많이 마셔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가진 미나리 모임은 성공적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서 내년 봄에도, 다음 해에도 미나리 모임을 하기로 했다. 그때는 소규모가 아니라 십여 년 전 모였던 것처럼 큰 상에 여럿이 둘러앉아 실컷 웃으며 미나리 파티를 즐길 수 있을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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