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선 Jun 13. 2021

아쉬웠던 관광지, 하지만 너무 좋았던 여행지 포르투

관광이 없어도 낯선 곳의 일상은 여행이었다.


3일 내내 포르투에는 비가 내렸다.


도착하는 날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가 둘째 날에는 비바람과 사투를 벌여야 할 정도로 쏟아졌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잠시 개었지만 오후에는 다시 비가 왔다. 15일 동안 여행을 함께 한 운동화는 젖어서 축축하고 빨아 널어 둔 양말은 쉬이 마르지도 않았다. 궂은 날씨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걸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계획했던 근교 여행이나 관광지들 대부분 취소하였다.



 거리를 걷다가도, 관광지에 갔다가도 비가 많이 내리면 숙소 또는 카페로 대피해 시간을 때웠다. 그래서인지 포르투에서 3일이나 머물렀지만 꼭 하루처럼 짧게 느껴진다. 




포르투에서 보내는 이틀, 비가 많이 오는 와중에도 우산을 쓰고 렐루 서점을 찾았다. 해리 포터 영화 속 호그와트를 꼭 닮은 서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객이 다녀가는 곳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작은 딸을 위한 기념품도 구입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점 안에서 사진도 찍어본다. 흐린 날씨와 비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 때문에 제대로 나온 사진이 거의 없었다. 소문대로 서점의 아름다운 모습과 영화 같은 멋진 분위기에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밖에 나와 맞닥뜨린 비바람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떻게든 일정을 이어가 싶지만 더 거세지는 빗줄기오후 내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렐루 서점 출처 : pixabay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때 비바람이 거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웬만하면 취소를 해야겠지만 꼭 가고 싶었던 곳이고 출발 전에 미리 예약해둔 까닭에 그냥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리 멀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는데 출발한 지 1분도 안돼서 후회를 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비와 바람 때문에 원래라면 분도 안 되는 거리를 두 배 넘게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이 꼴로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쭈뼛쭈뼛 들어가는 서로를 보며 어이없이 웃음만 나왔다. 더 황당한 건  험한 날씨에도 인기 맛집답게 테이블마다 예약 손님이 가득한데 어떻게 왔는지 다들 멋지게 차려입었고 추레하지 않고 뽀송뽀송하다. ... 우리도 택시를 탔어야 했어...


Muu steakhouse

그리 넓지 않은 규모의 레스토랑 내부는 모던하면서도 개성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고 분위기도 좋아 보였다. 우리 모습은 거지꼴이지만 눈치 주기는커녕 다행히도 직원들이 모두 절했다. 왜 그렇게 평점이 높은지 알 것도 같다. 우선 식전 빵과 간단한 크로켓 같은 음식이 먼저 서빙되었다. 먹지 않겠다고 하니 웃으며 공짜라고 말해준다.

스테이크 먹기 전에 배부를까 봐 그런 거지만...

공짜라니 조금만 먹어 볼까...  



드라이 에이징으로 숙성된 티본스테이크는 적당히 익혀져 부드러운 식감과 진한 맛이 훌륭했고 스테이크와 어울리는 레드와인은 향기로웠다. 멋진 공간, 맛있는 음식, 좋은 동행과 함께 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저녁 시간이다. 출발하기 전 남편은 한 번 정도 비싸고 좋은 거 사 먹으라며 100 유로 짜리 지폐 한 장을 무심하게 건네주었다. 그날의 만찬은 츤데레 같은 내 남편이 마련해 준 것이다. 스테이크 한 , 와인 한 모금에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남편과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여행을 할수록 늘어간다.


Episode.

화장실에 다녀온 딸이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한다.

"엄마,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 한번 가봐."

음... 글쎄 무서워하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가보고는 빵 터졌다. ㅋㅋㅋ

빨간 휴지... 파란 휴지...



도대체 여기서 이게 왜 나온 건데.ㅋㅋ

레스토랑 주인이 한국인인가?




마지막 날, 갑자기 갠 날씨에 신나서 포르투 거리를 온통 훑고 다녔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에 딸은 마냥 들떴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포르투 대성당을 시작으로 첫날 지나쳐 왔던 상 벤투 역, 볼량 시장을 거쳐 시청사 앞 광장에 세워진 커다란 포르투 조형물 앞에서 인증샷 찍어본다. 오랜만에 거리를 걸으한껏 여행의 여유를  느낀다. 역시 날씨가 좋은 편이 여행하기에는 편하다.



포르투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프란세지냐를 점심으로 먹고 이제 어디로 가볼까 싶은데 난데없이 다시 비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런... ㅠㅠ


급 피곤해하며 호텔에서 쉬고 싶다는 딸을 두고 혼자 포르투 거리로 나선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인데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첫날 딸과 같이 건넜던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혼자 건너보았다. 여행이 끝나가서 그런 걸까. 별것도 아닌 풍경가슴이 저릿해 오고 불어오는 바람, 강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도 왠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솜털처럼 날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그냥 걷기만 해도 너무 좋았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목적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 다니다 다시 히베이라 광장으로 돌아왔다.

마침 비가 그치고 잠시 비친 햇살 아래 해바라기처럼 여행객들이 도우루 강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삼일 만에 강변에서 버스킹 하는 가수를 볼 수 있었다.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버스킹 공연을 보았지만 왠지 더 반갑다. 후다닥 호텔로 돌아가 딸을 깨워 데리고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햇빛과 빛나는 강물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였다. 그런데 딸과 함께 호텔 밖으로 나오니 다시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고 다.

하... 포르투의 햇살 보기가 쉽지 않다. 



어느버스킹 하던 가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주위는 다시 고요한 강가로 변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도 좋아하는 나와 달리 딸은 비가 오면 힘들어한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포르투 마지막 식사 메뉴는 해물밥이다. 인기 있는 식당인데 오픈 시간에 맞춰 가서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우리나라의 국밥을 닮은 비주얼의 얼큰한 해물밥에 매운 피리피리 소스까지 곁들이니 소주가 엄청 당긴다. 새콤 상큼한 문어 샐러드도 별미였다. 그린 와인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결국 호텔에 돌아와 남은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이어졌고, 아쉬웠던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만 갔다.




포르투를 끝으로 지난해 2월에 다녀왔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 기록을 마무리했다. 16박 18일의 길다면 길었던 여행 일정 중에 단 3일만 비가 왔으니 나름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날씨가 계속 맑았다면 여행하기는 훨씬 수월했겠지만 날이 좋지 않아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록 미술관, 전망대 등 많은 관광지는 가지 못했어도 쓸쓸한 강변을 여유로이 걷는 것,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는 것 등 모든 일상들이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관광지를 순례하며 감상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듯한 색다른 일상의 풍경, 그곳에서 오롯이 홀로 자유로운 순간들, 이 모든 게 바로 여행이었다. 포르투 골목을 혼자서 걸으며 느꼈던 그날의 풍경과 감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낯선 길에서 그때 나는 여행자라서 너무나 행복했다.



기대보다 훨씬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여행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또다시 갈 날이 있을까. 어서 빨리 이 팬데믹 시대가 끝나고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비 오는 포르투도 좋았지만 그때는 맑고 선명한 포르투의 모습도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펜 드로잉: 몬세라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