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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Jun 04. 2021

점이 선이 되는 마법

#그림 - 에르베 튈레의 <Press Here> 그림책 중에서.#그림 - 에르베 튈레의 <Press Here> 그림책 중에서.

Connecting the Dots 



점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를 아시죠?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말이에요. 직관과 호기심에 충실했던 그는 대학 때 들었던 서체 수업이 훗날 맥 컴퓨터의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활자체를 창조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계획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충실하게 점을 찍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점들이 연결되었다고요. 오늘 찍는 점 하나가 그다음의 것과 어떻게든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무언가를 계속하도록 격려합니다. 엉덩이를 자꾸 앞으로 미는 것이지요. 



점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를 몇 개 더 아는데요.

그중 하나는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책 <점 The Dot>입니다. 

미술에 자신 없는 주인공 여자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기만 하자, 선생님은 하얀 눈 속의 북극곰을 그렸다면서 칭찬해 주죠. 여전히 심드렁한 아이는 선생님의 계속된 격려에 마지못해 점 하나를 그립니다. 선생님은 밑에 소녀의 이름을 사인하라고 하죠. 점 하나 찍힌 그림은 멋진 액자에 넣어져 교실 벽에 전시됩니다. 그걸 본 소녀는 그까짓 점 하나보다 더 잘 그릴 수 있다며 각양각색의 점들을 그립니다. 소녀는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한 소년에게 똑같이 말합니다.

"선을 그려봐." 

"자, 이제 사인해."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림책을 직접 보면 더 감동적이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느냐 하면 소녀가 맨 처음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을 때 선생님이 한 말 때문입니다. 


Just make a mark and see where it takes you.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 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우리말로 읽었을 때엔 큰 감흥이 없다가 영어 원문의 대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읽히더라고요. "점이라도 하나 찍어 봐. 그리고 그게 널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 한 번 지켜보렴."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이 '삶의 의미'이고, 그것이 하나의 선이라면.

그래서 멋들어진 선을 그리려고 애쓰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점 하나씩만 찍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점을 한 번 찍어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한 점 이야기들의 비밀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연결입니다. 



Photo by Robert Anasch on Unsplash



내 계획 너머의 통제 불가능함에 나를 열어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계획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룹니다. 동시에 인생에는 계획되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선을 잇는 것은 종종 생각지도 않은 기회, 사람, 사건의 영향일 때가 많습니다. 점을 찍는 행위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연결될지도 모르는' 미지에 나를 열겠다는 다짐입니다. 내가 그 모든 선을 연결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나의 오늘을 책임지는 행동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더욱 많은 연결이 우리네 삶 곳곳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가만 생각해 보니 '연결되고 싶어서'였거든요.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일을 쉬고 있다가 코로나 때문에 망설이면서 상담사의 정체성을 접고 있으니 정말 목이 말랐습니다. 일하는 나와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였고, 외적으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낯선 일에 도전하는 데에 꽉 막혀있던 저는 마음의 빗장을 좀 더 느슨하게 걸게 되었습니다. 이미 맺고 있던 친구,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제 귀를 더 열어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열려 있으려는 노력은 새로운 기회를 주기 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매우 즐거운 경험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마음 건강에서도 연결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 안에는 여러 모습이 있는데,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 분리된 모습들은 좀처럼 한데 뭉쳐지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말들을 종종 하지요. 


"(머리를 가리키며) 여긴 알겠는데, 마음은 그렇게 잘 안돼요."
"결심했는데 다음날이면 까먹어요."
"(손을 휘저으며) 저는 정말 진짜 괜찮거든요. 그런데 왜 술만 먹으면 그러는 건지.."


이에 대해 탁월한 해결방법을 알려준 심리치료사가 있습니다. 

메리 파이퍼라는 임상심리학자입니다. 후배 심리치료사들이 상담할 때 유념했으면 하는 것들을 일상적인 말을 이용해서 편지처럼 부친 책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은 세 가지 활동을 합니다. 즉,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합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구획화 compartmentalization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이런 세 가지 활동 사이의 점들을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이런 구획화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를 내고 낙담하면서도 이 감정들을 폭음이나 과도한 TV 시청 같은 행동과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담자들이 이 세 가지 활동을 연결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당신의 우울증이 당신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직원들의 수당을 깎은 일과 관련돼 있지는 않을까요?
"아들을 끔찍이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 

내담자가 이 중 하나의 차원에 대해서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면 다른 두 차원에 대해서 물어보세요. 또 하나는 내담자가 현재를 과거나 미래와 연결시키도록 돕는 것입니다. 

-메리 파이퍼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중에서-


사람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했고, 나는 왜 이랬고 등등의 이성적 설명과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데에 집중했는데 갈등의 해결책이 까마득하다면 그에 대한 내 감정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감정에 푹 젖어 보세요. 혼자 하는 게 어렵다면 감수성이 풍부한 누군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가 공감해주는 말에 귀를 열어보세요. 

연인 간 다툼이 잦을 때 내 감정에 대해서는 백 페이지라도 일목요연하게 써 내려갈 수 있지만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혹은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답할 수 없다면 감정 이외의 다른 두 차원인 생각하고, 행동하는 측면을 고려해 보세요. 

무시했던 다른 두 차원, 혹은 너무 집중했던 한 가지 차원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의 삶의 양식과 접한다면 나에 대해 더욱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따로 갈라져 있던 내 모습이 서로 어우러지고 연결될 것입니다. 점들이 연결되는 것처럼요.



별이 연결되면 별자리. Photo by Vedrana Filipović on Unsplash





궁금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방문하여 남기는 글이라 끄트머리에 작게 저의 소식을 전합니다. 작년 12월에 올린 글을 끝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네, 다시 글 쓰러 왔어요. 


지난 시간 동안 첫째는 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정기적이지 않더라도 꼭지가 모아지면 글을 적고, 또 적고 할 계획입니다. 저는 또 연결되고 싶으니까요. 


제가 새로운 글을 올리지 못했던 날에도 이 공간에 방문하고, 인사해 주었던 모든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또 말하러 올게요. 






* 제목에 쓴 그림은 에르베 튈레의 그림책 <Press Here>의 한 장입니다. 점 가지고 노는 그림책이에요. 읽다 보면 책을 마구 누르고 온갖 쇼를 다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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