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몸 돌보기
어젯밤, 잘 주무셨어요?
부모가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걸 하나 꼽아 보라면 저는 단연코 잠입니다.
이유는 젖이든 분유든 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수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때에는 수유 요령도 없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그냥 물리기만 하다 보니 보통 생각하는 3시간마다의 수유는 꿈도 못 꿨습니다. 3시간마다 한 번씩 젖을 먹고 얌전히 자는 아이는 책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요. 하루에 7시간 정도는 젖 물리는 데에만 쓰게 됩니다. 밤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요. 밤 10시에 잠을 청하면 12시 반에 일어나서 앉아있다가, 1시 10분에 다시 잠을 잡니다. 그리고 4시 40분에 또 일어나서 5시 20분까지 앉아있다가 잠을 자는 겁니다. 이렇게 하룻밤에 두 번씩 잠을 깨서 40분씩 앉아 있다가 잠을 자야 합니다. 100일 동안이요. 백일이 지나면 그래도 아이의 잠이 길어지니 엄마가 밤중에 한 번만 일어나거나 쭉 잘 수 있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의 기절을 하고 나면 백일의 기적이 오는 것입니다. 학생 때, 미혼 여성이었을 때, 아이가 없던 신혼 때엔 밤을 꼴딱 새우고 놀아도 괜찮았습니다. 다음 날은 휴일이었고, 12시든 1시든 늘어지게 자고 나서 하루를 멍하게 보내면 그다음 날은 그럭저럭 컨디션이 돌아왔거든요. 그런데 신생아와 함께 하는 삶은 절대로 일시 멈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신생아뿐만 아니라 그보다 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돌봄의 대가로 종종 잠을 포기합니다.
많은 요구가 생기고(자녀 돌봄, 일과 가정의 균형 잡기), 모두 무리 없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건 스스로의 잠과 휴식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특히 여성들에게 더 강한 것 같아요. 몇몇 연구들이 밝혀냈습니다. 성역할 태도가 평등해서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여성일수록 수면부족을 많이 경험한다는 사실, 그리고 여성들은 잠을 좀 더 자고 싶은 욕구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요.*
이렇게 부모의 잠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게 됩니다.
필사적으로 잠을 사수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게으름이 되고 맙니다.
당장 아이 숙제가 눈 앞에 있고, 업무 기한이 있으니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어요.
신경과학자이자 수면 전문가인 메슈 워커가 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 따르면 잠을 적게 자면 온갖 질병과 죽음이 가까이 온다고 합니다. 심장병, 비만, 치매, 당뇨병, 암같이 심혈관계와 대사, 면역, 생식계를 망가뜨린다면서요.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큼 위험할까 싶은데, 한 예를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외국의 서머타임(Summer time, Daylight Saving Time)이 시작되어 밤잠을 1시간쯤 못 자게 되면 바로 다음 날 심근 경색 환자 수가 급증하고, 반대로 수면 시간이 1시간 더 길어지면 다음날 심근 경색 환자 수가 급감한답니다. 단지 1시간의 수면으로요. (메슈 워커 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p.342 참고)
뿐만 아닙니다. 일을 더 하려고 잠을 줄였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일에 생산성이 떨어지고 더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래서 더 늦게 퇴근하고, 더 늦게 잠자리에 드는데,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정적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만일 관리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잠을 시원치 않게 자면 낮에 자제력도 떨어지고 직원들에게도 더 함부로 대한다고 해요. (같은 책 p.583-600) 힘과 결정권이 더 센 사람으로서 가정에서의 관리자를 부모, 직원을 자녀라고 비유해 본다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화나 짜증을 많이 내는 이유를 인성에서 찾기 전에 먼저 잠을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인 제가 필사적으로 잠을 지키려고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저는 매일 최소 7시간을 자야 그다음 날 일어났을 때 기분이 개운합니다.
8시간씩 자면 사나흘 뒤에는 반드시 잠이 잘 안 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7시간 이하, 8시간 넘게 자는 수면을 최대한 피합니다.
잠을 줄여야 할 날이 있다면 반드시 1주일 안에 이를 보충해서 평균 수면 시간을 맞춰줍니다.
저는 밤 12시-새벽 4시 사이에 집중하는 일을 하면 그다음 날 무척 힘듭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12시 전에 자려고 합니다. 똑같이 7시간을 자더라도 새벽 1시에 자서 8시에 일어나면 기분이 나쁜데, 밤 11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거든요.
저는 잠을 잘 못 자면 배우자에게 화를 많이 냅니다. 그리고 수면 부족이 몇 달 계속되면 어느 순간 감기에 시달립니다. 잠이 부족할 때 나의 기분이 주로 어떤지, 건강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직장과 가족 사이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면 수면 시간을 지키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됩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수면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때는 언제쯤 올까.
잠을 적게 자더라도 망가지지 않는 몸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4시간씩만 자는데도 건강하고 일도 잘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런 생각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타고난 신체적 한계를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슈퍼우먼이 아닌 그저 내가 되기 위해서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잠을 잘 자기 위해 정성을 들입니다.
누군가의 부모인 여러분들의 오늘 밤도 안녕하시기를 깊이 바라요.
*참고 논문
주익현 (2017) "자녀돌봄노동이 아내의 수면부족에 미치는 효과" 《한국인구학》40(40): 79-102.
Venn, S., Arber, S., Meadows, R. and Hislop, J. (2008). “The Fourth Shift: Exploring the Gendered Nature of Sleep Disruption among Couples with Children”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59(1): 79-97.